[데스크 칼럼] 퍼주는 추경 하자는 야당, 피하기만 하는 정부

이재원 기자 2023. 6.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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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기 좋아하는 것이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들으며 말이다. 이 대표는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쓰자는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이자 등에 12조원, 에너지 물가지원금 및 지역화폐예산 증액 등에 11조원, 미분양 주택 처리와 전세보증금 이자 지원 등에 7조원, 재생에너지 인프라 등에 4조4000억원이다. 상당수가 사정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을 돕자는 취지의 예산이다.

곳간이 넉넉하게 차 있다면 어려운 사람을 돕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 나라 살림이 넉넉지가 않다. 경기가 나쁜 데다 부동산 거래가 줄어든 여파 등으로 세금이 덜 걷혀 기왕에 쓰기로 했던 예산도 돈이 없어 못 쓸 상황이다.

4월까지 국세는 작년보다 34조원쯤 덜 걷혔다. 나라 살림 적자는 45조원 수준이었고, 국가채무는 1073조원을 넘었다. 가장이라면 가족에게, 최고경영자라면 직원들에게 길거리에 나앉지 않으려면 아껴 쓰자는 말부터 해야 할 때다.

게다가 추경이 꼭 필요한 시기인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경제가 너무 나빠질 것 같으면 추경을 통해 지출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가 회복 신호를 보이는 시기다. 물가가 진정됐고 수출이 늘며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는 살아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고용 지표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관료들은 물론 경제학자들이 추경의 필요성을 가늠할 지표로 첫손에 꼽는 것이 고용 지표다. 코로나 19 확산 초기처럼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라면 국가가 돈을 풀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고용 지표는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5월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달보다 35만1000명 증가하며 27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추경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다.

추경으로 돈을 풀 경우 간신히 진정시킨 물가를 다시 밀어올릴 위험도 있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안 그래도 높은 금리를 더 올리라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금리 상승의 피해는 어려운 사람이 더 겪는 만큼 이래저래 추경으로 돈을 풀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추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3일 국회에서는 “세수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면서 35조원을 더 쓰겠다고 하면 나라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했다.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부족한 세수에 맞게 예산안을 다시 짜는 추경이 필요해서다. 이른바 ‘감액 추경’, ‘세입 경정 추경’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는 말이 없다.

정부는 예상되는 세수에 맞춰 지출 규모를 줄이거나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한다. 정상적인 절차, 즉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서 말이다. 그러나 국회와 상의하지 않고 기금 등 여유 재원을 돌려 최대한 막아내겠다는 게 지금 정부의 방침이다.

아마도 정부는 세입 경정 추경을 받아들이는 순간 국회에서 야당의 십자포화를 맞을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랏빚을 늘렸다고 그렇게 욕하더니 너희는 뭐가 다르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민주당이 이걸 노리고 추경을 주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여당은 정공법을 써야 한다. 살림을 하다 보면 수입이 모자랄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지출이 늘어날 때도 있다. 그럴 때 하는 것이 추경이고 나쁜 것도 아니다. 왜 당당하게 못 하는가.

퍼주자는 야당이나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정부와 여당 모두 ‘추가경정예산’을 그저 정치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정치 논리로 예산에 접근해 빚만 잔뜩 늘어난 게 불과 엊그제 일이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나라 곳간 걱정을 해야 하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재원 경제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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