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발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다”

김민정 기자 2023. 6. 24.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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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가 만난 사람]
100만부 ‘나는 옐로에…’ 쓴 브래디 미카코

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64쪽 | 1만6000원

“‘가난’의 경험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발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들처럼 일상 생활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일본에서 100만부 팔린 에세이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2020)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58)는 ‘빈곤’과 ‘계급’ 문제 등에 대한 논픽션을 주로 써왔다. 이런 종류의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 일본에서 100만부 팔리는 일은 보기 드문 일.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슈퍼마켓 직원, 보육사 등으로 일하다 단숨에 일본의 인기 작가가 됐다. 스스로는 자신이 거둔 성공을 “앤디 워홀이 말했던 ‘15분간의 명성’ 같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의 계급 투쟁’(2019)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2022) 같은 전작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던 작가의 첫 소설도 가난이란 돌멩이가 잔뜩 굴러다니며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양손에 토카레프’(다다서재)다. 약물 의존증 엄마 밑에서 어린 동생을 돌보기 위해 도둑질도 불사하는 열세 살 소녀 ‘미아’의 이야기, 그리고 100년 전 조선에 살았던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하는 ‘후미코’의 서사가 동시에 펼쳐지는데 가난과 절망적인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이들은 어떻게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도달하게 될까. 토카레프는 권총 이름이다.

책 출간을 계기로 서면으로 만난 작가는 주인공 미아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작가가 직접 겪고 목격한 것이 소설의 재료가 됐다. 그는 “돈이 없는 것이 제 유년 시절 고난과 시련의 원인이었기에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계급’”이라며 “지금 당장 제 경험을 전부 적으면 200페이지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80년대에 일본은 대단한 호황기라 전 국민이 중산층에 속한다는 뜻의 ‘일억총중류(一億総中流)’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시대에 가난은 꼴사나운 것이었고, (제가 입시 명문고에 다닌 탓도 있지만) 돈이 없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할 수 없는 사회였어요.”

브래디 미카코는 “빈곤 지역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는 논픽션으로 쓰기에 너무나 혹독하고,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어 소설의 형식을 빌리게 됐다”고 했다. /ⓒShu Tomioka

지긋지긋한 ‘부끄러움’으로부터의 탈출이 영국행이었다. 영국 음악에 빠져있던 그는 영국 문화계 인사들이 ‘나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라고 ‘쿨하게’ 말하는 것이 부러웠다.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돈이 모일 때마다 영국으로 향했고, 1997년 영국인 남편과 결혼해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에 이주했어도 가난한 건 똑같아 일을 닥치는 대로 했어요. 장기 무직자와 빈곤 가정을 지원하는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했던 경험이 ‘아이들의 계급 투쟁’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제가 글을 쓰게 된 원점이 됐죠.” 그는 책에 영국 밑바닥에서 목격한 계층 격차와 아이들이 처한 빈곤, 차별 등의 문제를 생생히 기록했다. “음악 칼럼과 리뷰 등을 청탁받아 써오긴 했지만,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모국인 일본에 대해 그는 ‘현실을 못 본 척한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의 책은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선 어려운 책이나 급진적인 책이 잘 읽히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읽은 일본 독자들의 감상을 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읽기 쉽다’ ‘술술 읽힌다’ 같은 말입니다. 저자로서는 기분이 묘해지는 감상이지만, 많이 판매된 이유 중 하나는 쉽게 읽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면서 그는 “일본보다 한국의 창작자들이 훨씬 생생하게 ‘계급’을 의식하고 있고, 일본처럼 현실을 못 본 척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제 맘대로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 같은 작품은 지금의 일본에서 나올 수 없다”며 “빈곤, 부패 등 진지한 사회 문제를 흥미롭게 엔터테인먼트에 담아내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책에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담았지만, 이를 통해 이루려는 목표 같은 건 전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 이쪽은 이런 상황입니다만, 그쪽은 어떤가요’라고 그저 언론이 전하지 않는 사회의 양상을 써서 독자에게 던지는 것”이라며 “그 뒤로는 독자들이 각자 생각해서 행동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신 과거의 ‘나’ 같은 누군가에게 ‘도망칠 공간’을 주기 위해 책을 쓴다. “저도 주인공 미아처럼 어렸을 때는 가난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이곳만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야’라고 계속 믿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책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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