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오늘을 참고 견디는 이들에게
노벨문학상을 탄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문학동네)는 나에게는 청춘의 아픔이 깃든 소설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영어판으로 몇 달을 들고 다녔는데, 끝내 다 못 읽고 포기했다. ‘시즈 더 데이(sieze the day·오늘을 잡아라)’라는 영어 표현이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같은 의미라는 정도만 알게 되었다. 쉰다섯 살이 되어 뒤늦게 이 소설을 잡은 이유는 이 책의 제목을 글에 인용할 일이 생겨서다.
‘오늘을 잡아라’는 원래 걱정과 고통을 잠시 접고 이 순간을 즐기라는 뜻이다. 소설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둔 주인공이 마지막 남은 목돈을 사기당할 때 나오는 표현이다. 주인공은 이 말을 듣고 인생 역전의 기회를 생각하며 돈을 건네고, 돼지고기 지방으로 제조한 라드유에 투자한다. 이 돈이 실제로 투자가 된 것인지, 아니면 사기꾼이 가지고 도망갔는지는 불분명하다. 주인공이 망했다는 사실만 명확하다.
소설의 포맷은 요즘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180쪽 정도의 짧은 소설이고 호텔에서 먹는 아침 식사로 시작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오후까지의 몇 시간 동안의 얘기인데, 첫 장면인 아버지와의 아침 식사가 무려 48쪽이나 되어서야 나온다. 주인공이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할리우드로 떠나 단역 배우로 떠돌던 얘기를 비롯해서 그가 호텔에서 생활하고, 더군다나 성공한 의사였던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게 되는 얘기들이 수다스럽게 중간중간에 계속 끼어든다.
“그의 인생 역정은 그런 오판이 열 번이나 거듭된 결과였다.” 이 문장을 보면서 나도 내가 겪은 오판의 연속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 순간에라도 전에 있던 회사의 사장에게 사과하고 다시 복귀하면 문제가 풀릴 수 있지만, 그는 머리를 숙이기보다는 “오늘을 잡아라”를 되뇌며 잘 알지도 못하는 선물시장에 남은 돈을 ‘몰빵’한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몰입했던 건 정말 오랜만이다. 주인공의 행적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내가 소설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대학 때 유일하게 문학 수업을 좋아했다는 주인공은 솔 벨로의 자전적 모습이기도 하다. 성공하기 전까지 돈 때문에 고생하고 모욕당했던 작가의 감정이 배어들어가서인지, 심리 묘사가 끈적끈적하다. 오늘을 참고 견디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얘기다. 오늘을 잡으면 큰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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