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술꾼’ 클레오파트라는 애주가일까 중독자일까 [Books]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6. 2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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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 드링크 / 맬러리 오마라 지음 / 정영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클레오파트라. [사진=픽사베이]
인간 희로애락에 빠질 수 없는 술. 술은 고대 문명이 태동하기 전부터 거대 제국의 전쟁과 통치, 문학·과학·예술 등 문화적 번성 등 인류의 모든 순간에 함께 했다. 그곳엔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있었다. 오히려 술의 탄생과 유구한 역사엔 여성의 역할이 더 컸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 뉴잉글랜드 출신 영화 제작자인 저자 맬러리 오라마는 “한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알고 싶다면 술잔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술에 얽힌 여성의 지위 변화는 물론이고, 클레오파트라·양귀비 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술을 즐겼던 여성 영웅에 관한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간다. 지난해 영국 매체 가디언에서 ‘역사와 정치’ 분야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술꾼 여자’가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것은 문명이 태동하고도 몇천 년이 지난 후였다. 고대 여성은 직접 술을 만들고 즐겼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술과 유흥의 신 ‘디오니소스’가 존재하기 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와 이집트 문명엔 이미 술의 여신 ‘닌카시’와 ‘하토르’가 있었다. 남녀 모두에게 술 마시고 취하는 일이 흠은 아니었고, 아울러 경제적 자유와 법적 권한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누렸다. 그러다 기원전 1754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바빌론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 이후 여성 억압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가령 중세에 술 만들어 파는 여성은 마녀로 매도됐다. 당시 하류층이 즐겨 마시던 맥주 ‘에일’은 주로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만들어 팔았는데, 이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집에 긴 빗자루를 수평으로 걸어놓고 눈에 띄는 긴 모자를 썼다.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마녀의 모습이 이들과 유사한 게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당시 덩치를 키워가던 기독교 교회가 술집과 신도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술집은 악마의 학교’라며 술 파는 여성을 죄악시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여성이 술을 당당하게 마시고 즐기는 건 권력의 상징이었지만 이마저도 영원하진 못했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군주 클레오파트라 역시 술을 즐겼는데, 그가 후대에 ‘악녀’ 내지 ‘요부’로 알려진 것은 당시 권력 다툼 끝에 승리한 로마 제국이 쓴 역사의 기록 때문이었다. 여성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로마 제국은 클레오파트라를 눈엣가시로 여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략적이고 유능한 지도자였던 클레오파트라가 연인인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와 함께 음주 모임 ‘흉내 낼 수 없는 간’을 만들어 와인과 음식, 도박과 사냥 등을 즐겼을 정도의 애주가였다는 사실 등을 소개한다.

여성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책은 성별을 넘어 모든 애주가를 위한 이야기보따리다. 천만년 전 상한 과일에서 시작됐을 알코올의 기원부터, 맥주·와인·보드카·진·위스키 등 현존하는 모든 술의 탄생과 흥망이 재밌는 옛날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의 역사뿐 아니라 중국·베트남·인도 등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으려 한 노력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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