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빚어왔지만 주류서 ‘억압’… 술에 대한 여성의 역사

송용준 2023. 6. 2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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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체리를 얹은 핑크빛 칵테일, 시럽을 추가해 단맛이 나는 술은 소위 '여자들'이나 마시는 음료로 분류되고, 맥주나 위스키야말로 남자들이 마시는 '진짜' 술로 추앙받아 왔다.

작가이자 애주가인 저자는 애초부터 음주라는 행위에 성별을 따졌는지, '여성용 술'이라는 개념이 어쩌다 생겨난 것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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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 드링크/맬러리 오마라/정영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2만4000원

오랜 기간 체리를 얹은 핑크빛 칵테일, 시럽을 추가해 단맛이 나는 술은 소위 ‘여자들’이나 마시는 음료로 분류되고, 맥주나 위스키야말로 남자들이 마시는 ‘진짜’ 술로 추앙받아 왔다. 작가이자 애주가인 저자는 애초부터 음주라는 행위에 성별을 따졌는지, ‘여성용 술’이라는 개념이 어쩌다 생겨난 것인지 궁금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여자, 술, 역사라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진 책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본인이 직접 쓰겠다고 결심하면서 ‘걸리 드링크(Girly Drinks)’라는 흥미로운 책이 탄생했다.

저자는 역사 속 술과 여성을 탐구하면서 “한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알고 싶다면 술잔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된다”고 일갈한다. 고대 맥주의 여신 닌카시에서 볼 수 있듯 알코올이 처음 발견됐을 당시 술을 만들고, 팔고, 마시던 현장의 중심엔 여성들이 있었고 추앙받았다. 하지만 바빌론 제국이 등장하며 나온 함무라비 법전은 여성의 경제적·성적 자유에 대한 치명타였다. 여성들은 지위 하락과 함께 양조산업에 대한 주도권도 잃었고, 술의 성별화가 시작됐다. 이후 “인류의 역사 내내 여성의 음주를 허용하는 문화와 여성의 자유를 허용하는 문화가 강하게 연결돼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맬러리 오마라/정영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2만4000원
바빌론의 전통은 그리스와 로마시대까지 이어졌다. 이런 문화 속에 그리스에서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을 가진 데다 술까지 좋아하는 위험한 인물이었기에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 맥주를 만들던 역할을 해 예일와이프로 불렸던 여성들은 마녀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이런 억압 속에서도 술을 향한 여성들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중세 수녀원에서는 와인과 맥주를 빚었고, 르네상스 시대 메리 프리스는 여성도 편한 바지를 입고 술집에 가서 술을 진탕 마시고 말썽을 피울 줄 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줬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보드카 무한 제공이라는 공약을 앞세워 혁명을 일으키고 제국을 건설했다. 중국 송나라 이청조는 슬품과 술, 욕망이 남성에게만 허가된 시대에 술과 성에 대한 작품을 쓰는 여류시인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날렸다. 금주법 시대에 밀매업자로 맹활약한 것도 여성이었다.

저자는 술의 연대기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보여줄 뿐 아니라 여성들이 자유롭게 술을 마시기 위한 투쟁의 역사도 들려준다. 이를 통해 함무라비 법전시대 이래 유구하게 이어져온 여성의 음주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그 기저에 깔린 가부장제의 모순을 짚어낸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들은 오랜 세월 노력하여 이제 다시 겨우 원점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여성의 권리는 진전되어 왔지만, 여성의 힘을 두려워한 정부와 제도의 억압으로 다시금 후퇴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여전히 싸움과 승리, 패배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녀들의 회복력이다. 눈앞의 모든 술은 여성의 술(girly drink)이다”라고.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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