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밥은 차려줬냐고? 이 시대에?[책과 삶]

최민지 기자 2023. 6. 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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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장류진 지음
창비 | 336쪽 | 1만6800원

주연은 살면서 실패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입시나 취업 같은, 살면서 마주한 여러 관문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대형 회계법인의 시니어 회계사로 고액 연봉을 받는 주연은 엄마에게 늘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신하게 해주는 존재다.

그런 그에게 딱 한 가지 어려운 것은 운전이다. 운전공포증 때문에 10년 넘게 장롱면허 신세인 주연은 어느 날 운전연수를 받기로 마음먹는다.

때마침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수입차 할인 프로모션, 때마침 나온 상반기 인센티브, 때마침 몇달간 출근하게 된 클라이언트 사무실의 애매한 교통편…. 모든 것이 운전연수의 세계로 주연의 등을 떠밀었다.

동네 육아카페에서 추천받은 일타 강사 ‘작달막한 단발머리 아주머니’는 그러나 첫 만남에서 불쾌한 인상을 남긴다. 비혼주의자인 주연에게 “남편 밥은 차려주고 왔냐”는 운전강사의 질문에 주연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주연은 이 아주머니와 보내는 5시간 후 홀로 도로에 나갈 수 있을까.

<연수>는 장류진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판교를 배경으로 한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가상통화 투자 열풍을 소재로 한 첫 장편 <달까지 가자>로 ‘밀레니얼 리얼리즘’이라는 별명을 얻은 장류진은 이번에도 ‘대도시 밀레니얼 세대’의 삶을 여섯 편의 단편에 그려냈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지닌 에너지 회사에서 여성으로서 부장까지 오른 현수영과 술집을 운영하는 천 사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공모’는 특히 흥미롭다.

장류진이 밀레니얼을 넘어 다른 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는 작가라는 확신을 준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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