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엎친데 덮친 한국 소부장 ‘울상’
불황에 반도체 감산 여파
미중 정치적 갈등도 한몫
베어링은 반도체 장비를 가동하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바꿔줘야 하는 소모품이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부품인데도 불구하고 중국 수출 물량이 급감한 것이다. 악화된 반도체 경기를 고려하더라도 A업체에게 이런 일은 최근 몇 년 간 처음 겪는 일이다.
A업체 대표는 “중국 매출은 특히 현지업체가 대다수인데 주문이 거의 없다”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끓는 속만 삭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와중에 대중국 수출이 쪼그라들면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들어 주요 반도체 소부장 업체 대부분의 매출이 1년 전보다 감소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반도체 불황에다 미국의 대중국 규제 등으로 중국 내 반도체 투자가 줄어든 탓이다.
23일 주요 반도체 소부장업체 19곳의 올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14곳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한 업체들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Fn반도체소부장지수’에 포함된 곳이다. 이들 기업의 매출을 합산해보니 작년 1분기 3조4124억원이었던 19개사 매출이 올 1분기에는 2조7939억원으로 18.1% 감소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반도체 업황보다도 미중 갈등과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대중관계 등 ‘정치적인 이유’를 더욱 핵심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미국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반입을 규제하면서 중국에 공장을 둔 기업이 눈치를 보고 있는 탓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한국이 반도체 장비 반입 금지 조치를 유예받았다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도체 업황이 안 좋은 데다가 대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소부장 업체 상당수의 해외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국내 소부장 업체의 경우 해외 매출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온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운데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반도체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축으로 현지 반도체 기업이 국내 소부장 업체의 주요 고객이다.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을 판매하는 대덕전자의 경우 올 1분기 대중국 매출이 43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653억원)보다 33.7% 줄었다. 중국은 이 회사의 해외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같은 기간 반도체 증착장비를 공급하는 원익IPS의 해외 매출은 59.0%, 반도체 검사용 장비를 만드는 리노공업은 54.7% 각각 감소했다. 심텍(-51.7%)과 이오테크닉스(-43.8%), 하나머티리얼즈(-32.6%) 등 주요 소부장 기업의 반도체 관련 해외매출 역시 모두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줄어드는 건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총수출액 가운데 25.3%를 차지했던 중국 비중은 올 1분기 19.5%로 5.8%포인트 줄었다. 관세청이 집계한 이달 1~20일 대중국 수출액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5% 감소했다. 미국(18.4%)과 유럽연합(26.4%) 수출이 크게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에선 중국의 소부장 자립이 빨라지고 있는 점도 매출 감소의 이유로 꼽는다. 조의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중간재 자립도가 향상되면서 우리나라 대중국 중간재 수출이 부진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전 세계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이 당장 중국에서 벗어나 수출 통로를 다변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이 이들 기업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당장 제품을 못 팔면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 매출을 다른 곳에서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는 미국 또는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또 다른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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