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690억 배상' 판정 근거 보니..."국민연금 표결 행위는 국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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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 간 국재분쟁 중재판정부가 주요 쟁점에서 엘리엇 측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23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한국 정부와 엘리엇 사이의 투자자-국가 국제분쟁해결제도(ISDS) 사건에 대해 내린 판정 요지서를 공개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 20일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선고일 환율 1,288원 기준 약 690억 원)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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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국민연금 표결-물산 주주 손실 인과 인정"
②"대한민국 정부, 한미 FTA 협정 의무 위반"
'국정농단' 국내 유죄 확정 판결이 상당 영향
법무부 "전문가와 판정문 면밀 분석 후 대응"
한국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 간 국제분쟁 중재판정부가 주요 쟁점에서 엘리엇 측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손해액 산정 기준에서는 정부의 계산법이 인정돼, 배상 금액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23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한국 정부와 엘리엇 사이의 투자자-국가 국제분쟁해결제도(ISDS) 사건에 대해 내린 판정 요지서를 공개했다. 요지서는 판정문 전문을 사건 진행 경과와 주요 쟁점에 대한 중재판정부의 판단 등으로 정리한 일종의 요약서다. 판정문 전문은 소송 당사자(한국 정부와 엘리엇) 간 협의를 통해 공개 여부가 결정된다.
중재판정부는 지난 20일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선고일 환율 1,288원 기준 약 690억 원)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엘리엇 측의 최초 청구금액 7억7,000만 달러(약 9,917억 원) 중 7%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법률비용(약 2,890만 달러·372억여 원)과 지연이자를 포함하면 판정부의 결정 액수는 1,300억여 원에 달한다.
요지서에 따르면, 판정부는 이 같은 배상 결정에 있어 대부분 엘리엇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먼저 판정부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이 국민연금의 합병 표결에 개입한 행위를 협정상 국가 책임의 근거가 되는 '조치'로 봤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주주로서의 순수한 상업적 행위에 불과하므로, 국가의 조치가 아니다"는 주장을 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정부는 더불어 "국민연금은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우리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로 판단했다.
판정부는 국민연금의 표결과 삼성물산 주주의 손해 사이 인과관계도 지적했다. 합병 당시 한국정부가 사실상 본건 합병에서 캐스팅보트인 국민연금을 압박해 찬성 투표를 하게 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이자 합병에 반대했던 엘리엇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번 판정에는 엘리엇 사건의 단초가 된 '국정농단' 사건의 국내 재판 결과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가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으며,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역시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같은 형이 확정됐다. 법무부는 "판정부는 국내 형사 확정 판결을 인용해, 국민연금 표결과 주주들 손실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판정부는 아울러 "한국 정부가 협정상 '최소기준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최소기준대우 의무는 한미 FTA 협정문 내 조항(11.5조)으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한 국제관습법상 외국인에게 인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합병 개입으로 엘리엇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과 관련한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다만 법무부는 "중재판정부가 손해액 계산 방식에 있어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엘리엇은 합병이 부결됐을 경우 상승했을 삼성물산 주가를 기준으로 자신들의 손해액을 산정했는데, 판정부가 실제 삼성물산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향후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 대리 로펌 및 전문과들과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판정 취소소송 등 후속 조치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불복 시 정부는 판정 선고일로부터 28일 이내에 사건의 법정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늦어도 7월 중으로는 대응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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