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은 왜 유럽에서 '희귀 음식'이 됐을까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6. 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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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5억마리 넘던 거래량
이미 150년전 70만으로 급감
무분별한 포획·자연파괴로
굴 군락지 95%이상 사라져
음식 넘쳐나는 시대라지만
수백만 식재료는 멸종 위기
게티이미지뱅크

'음식들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마다 거리마다 맛집과 먹거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이 무슨 해괴한 말일까. 신간 '사라져 가는 음식들'을 쓴 BBC 기자인 저자는 음식이 잉태한 문명을 탐험하면서 "수많은 음식들이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풍요의 뒤안길에 선 인류가 오래 먹어왔던 식재료가 임종에 처해 있음을 실증하고, 이 때문에 인간의 미각이 균질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탄자니아에 거주하는 하드자족(族)은 하루 섭취 칼로리의 25%를 제공하는 꿀을 채취하는 방법이 꽤나 이색적이다. 바오바브나무 가지를 일일이 살펴 숨겨진 벌집을 찾는 일은 고달프다. 그들은 500년간 벌꿀길잡이새와 꿀 채취를 협업해 왔다. 흰색 깃털을 가진 손바닥 크기의 작은 새가 벌집을 단번에 찾아내면 하드자족은 연기를 피워 벌을 쫓아낸다. 새도 인간 없이는 달콤한 꿀을 얻을 수 없다. 스스로 꿀을 얻으려다간 벌에 쏘여 죽게 되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음식들 댄 살라디노 지음, 김병화 옮김 김영사 펴냄, 2만9800원

수렵인이 휘파람을 불며 "아크, 에크, 에크, 에크"라고 말하면 새와 인간 사이에 '거래'가 성사됐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벌꿀길잡이새와 하드자족의 공생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중이다. 외부인들이 탄자니아의 수만 헥타르 땅을 가축용 목초지나 작물을 기르는 농지로 전환하면서 탄자니아 원주민들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고 있다. 일부는 자연의 선물을 망각하고 NGO가 제공하는 구호 식품에 의존한다.

유럽의 해산물 식당 탁자에 앉으면 굴이 왜 이렇게 비싼가 싶어진다. 시장 좌판에서 굴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200년 전만 해도 런던에서는 약 3500명의 굴 판매상이 매일 쏟아지는 굴을 거래했다. 웨일스에선 부자든 빈민이든 펍에 몰려가 맥주 안주로 굴요리를 만끽했다. 1850년대 5억마리의 굴이 거래됐던 런던 빌링스게이트 시장은 그러나 1870년대 굴 판매량이 700만마리로 쪼그라들었고 1880년대엔 다시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가봉에서 10㎢의 거대한 굴무덤이 발굴됐는데,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예선에 타기 전 아프리카인이 바로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굴이었다. 살, 소화기관, 심장, 아가미, 피까지 전부 먹는 굴은 행성 지구에서 채취 가능한 가장 완벽한 식품이다. 하나의 굴이 바닷물 200ℓ를 여과하고 정화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남획, 질병, 기생충으로 굴의 수량은 매해 감소한다. 유럽의 굴 군락지는 과거에 비해 95% 이상 파괴됐다.

아프리카와 유럽에 이어 아시아에서 사라지는 식재료도 저자는 공히 다룬다. 한국에서 사라지는 식재료는 흔히 오골계로 부르는 오계(烏鷄)가 대표적이다. 오계는 충남 논산 연산면에서 나는 천연기념물로, 허준 '동의보감'은 머리부터 발톱까지 약재로 소개한다. 매일 알을 낳는 다른 닭과 달리 오계는 사나흘에 1개의 알만 생산한다.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의 몸도 회복시켰던 전통적 닭 품종 오계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다른 품종이 대거 도입되며 점차 쇠퇴 중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 유명 브랜드 버거를 먹고 해안가에서 먼 도시에서도 초밥을 먹는 시대. 우리는 음식의 풍요를 누리지만 그 이면에선 식물과 동물 100만종이 멸종 위기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단일 품종을 심으려 삼림을 밀어버렸고 돼지고기는 단 한 품종의 돼지 유전자로 균질화됐다. 저자는 쓴다. "세계 80억 인류의 경험 전체가 균질성의 덩어리로 수렴되는 시대다."

음식은 이미 우리 자신의 일부이며 우리 자신을 설명하는 정체성의 근원이다.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생물에 품었던 경외심을 현대 인류에게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자연이 상품화하면서 우리 존재를 지탱했던 자연이 사라지는 중이라고, 살아 숨쉬던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던 수많은 귀한 생물이 이제 임종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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