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와 고요한 평화 … MZ 구름관객 몰린 이유 알겠네
반려견 '레오' 연작으로 유명
"좋아하는 것 그리기도 시간 부족"
추상화 같은 자연풍경 그려
하늘의 푸른색과 바다의 짙푸른 색이 경계가 맞닿아 있다. 두 개의 캔버스에 하늘과 바다를 각각 그려 세로로 포개 놓으니, 제주의 광막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소재를 고민하진 않아요. 마흔에 처음 여행을 가서 제주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은퇴 후 이제는 제주에 살게 되니 소재가 넘쳐나요. 작가는 환경의 지배를 받나 봐요. 보고 느끼는 걸 그리는 것뿐인데 좋아하는 것만 그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요."
김보희 작가(71·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매일 반려견 레오와 작업실이 있는 제주도 중문 일대를 산책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바다와 정원, 식물과 달은 그대로 화폭으로 들어왔다. 지난 2년간 그린 신작들은 그래서 일상과 맞닿아 있다. 2020년 금호미술관 전시 당시 격리에 지쳐 위안을 찾는 MZ세대 관객을 구름처럼 몰고 오면서 스타가 된 김보희 작가가 갤러리바톤에서 7월 1일까지 개인전 'Towards'를 연다.
2022년 제주현대미술관 전시까지 두 차례 미술관 회고전에서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작을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는 친밀하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스타가 된 이후 작업의 변화는 없을까. 작가는 "예전에는 전시에 미술계 관계자들만 왔었다. 그런데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전시를 열어놓고 사람이 안 오겠구나 걱정했는데, 갑자기 유명해지고 젊은 관객이 와주니 감동적이었다. 책임감을 느끼지만 제가 할 보답은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녹색과 푸른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풍경화들은 소재도 색채도 구도도 날이 갈수록 단순해지고, 바다 그림에선 극도로 단순해져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내 그림을 추상화냐고 묻는데, 자연을 그린 것뿐이다. 내가 만난 바다들인데 색을 더 강조해 그렸으니 사실 그림과 똑같은 바다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림마다 숨겨진 주인공들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4점의 대작을 나란히 건 '레오' 연작. 길 위의 레오, 나무 뒤에 숨은 레오, 정원에서 쉬는 레오 등을 만날 수 있다. '산수 병풍'을 연상시키는 전통적 구도에 화려한 발색으로 현대적 풍경화를 완성했다. 야자나무가 우거진 정원 그림에선 빨간 잔이 '신스틸러'다. 작가는 "매일 산책하는 길을 그렸다. 커피 잔을 그려넣은 건 내가 다녀갔다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Towards' 연작 12점과 '레오' 연작을 만나고 전시장 입구로 향하면 작업적 변화의 단초를 느낄 수 있는 'Beyond'가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산방산의 봉수대에 떠오른 만월(滿月)이 농밀하다. 작가는 "저녁을 먹고 산방산 산책을 하는데 마침 큰 보름달이 떴다. 초저녁이라 아주 깜깜하진 않은데 너무 벅차고 아름다웠다. 달을 더 그리고 싶다. 달을 보는 감정을 충실하게 묘사해 보려고 한다. 'Beyond'라 이름 붙인 것처럼 더 크고 초월적인 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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