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사치'였던 엄마들 모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앨리스 닐(1900~1984)은 유행과 무관하게 자기만의 화풍을 밀어붙여 거장의 반열에 오른 초상화가다. 그는 네 아이를 낳았지만 둘을 잃었다. 첫째 딸은 디프테리아로 사망했고, 둘째 딸은 엄마와 떨어져 살다 엄마에 대한 원한을 간직한 채 자살했다. 두 딸이 모두 죽은 후 어느 날 닐은 아기 침대 창살에 목이 끼어 질식사한 아기의 뉴스를 읽고 침대에서 죽은 아기의 그림을 그렸다. 제목은 '헛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두 아들을 키우며 닐은 쉬지 않고 그렸다. 70대에 이르러 대형 회고전을 치르면서 "그림 그릴 권리가 없는 듯한 기분을 언제나 느꼈다"고 털어놨다.
돌봄과 일은 양립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많은 엄마 예술가들은 이 두려움과 불안함을 극복하고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냈다. 이 책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엄마 됨'의 의미를 탐구한다. 창조성에는 절대적 고독이 필요하다는 편견을 단박에 깨부순다. 전기작가이자 비평가인 줄리 필립스는 이 책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셜리 잭슨, 수전 손태그 등 엄마이기를 선택했던 20세기 대표 예술가들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이야기의 시작은 1920년대부터다. 이 시기 최초의 효과적 피임법이 싼 가격에 등장했고 라텍스 콘돔도 발명됐다. 1960년대에 경구피임약이 승인받았고 낙태도 1967년 영국에서, 1972년 미국에서 합법화됐다. 피임과 낙태로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여성들은 자아를 되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양육은 분투다. 이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닐에게 저자는 '모성 지대의 무법자'란 별명을 붙여준다. 가족 부양 때문에 그는 미술을 전공하는 대신 비서 학교에 진학했다. 타이피스트로 일하며 야간 미술 수업을 듣던 어느 날, 저축한 돈을 가지고 디자인 학교에 지원했다. 그는 예쁘장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닐은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딸을 아파트 비상계단에 방치했다며 시집 식구들에게 무고를 당하고 딸의 양육권을 빼앗기기도 한다. 닐은 아이를 잃은 뒤 모성의 주제에 매달렸다. 예민한 시선으로 묘사한 임신한 며느리는 불안해 보인다. 엄마는 버둥거리는 몸을 비트는 아기들을 안고 있다. 한 세기 전 인상파 화가 메리 카사트가 행복에 겨운 아이와 여인을 그렸다면 같은 주제에 닐은 양가성과 모순을 더했다. 닐에게 그림은 피난처이자 자아에 대한 주장이었다.
도리스 레싱은 1962년 '금색 공책'을 펴냈는데 이는 치열하게 세 아이를 키우던 40대 엄마의 대담한 문학적 성명과 같은 작품이었다. 같은 해 수전 손태그는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첫 소설을 탈고했다. 손태그가 글을 쓰는 동안 옆에는 열 살 난 아들이 타자를 치는 엄마 옆에서 대기하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곤 했다. 엄마들에게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한 그해에 닐도 영향력 있는 예술 잡지에 소개되며 62세에야 작가로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임신과 가족을 주제로 한 만년의 작품은 화가로서 최후의 웅장한 증언이다.
나오미 미치슨은 런던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며 글을 썼고, 셜리 잭슨은 주방에서 플롯을 구상했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차가 정차할 때마다 수첩에 메모를 했다. 글쓰기는 단절되고 산만했지만 그럼에도 단어는 흘러나왔다. 작가들은 양육의 경험이 분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모성은 또 다른 힘이 됐다. 배우자와 자녀의 사랑이 지지·자유·강인함의 강력한 원천이 되곤 했다. 토니 모리슨은 엄마가 되는 일이 "내게 벌어진 가장 해방적인 일"이라고 했다. SF 거장 어슐러 르 귄은 결혼 생활과 자녀를 통해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정감을 찾았다. 그는 자녀가 없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친구는 그에게 양육이 어떤 것인지 종종 물었다. 맏딸의 첼로 연주회에서 눈물을 흘린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 아파서 집에 있는 아들과 함께 종이 장식을 오리며 하루를 보낼 계획을 들려주곤 했다. 이 모든 일이 모성적 실천이었다.
전기작가답게 파편적인 예술가들의 삶에서 교집합을 찾아낸다. 그의 눈에 이들은 엄마 영웅들이다. 타인의 비난, 자신의 죄책감, 채워지지 않는 허기, 아이를 향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창조적 모성의 양분이 됐다. 저자는 자신조차도 한계에 직면해 절망케 하는 육아의 경험을 토로한다. 그는 "모성은 나를 시험해보게 하고 내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데, 이런 면에서 글쓰기와도 비슷했다"며 "제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한 젊은 오이디푸스를 향한 일격으로, 엄마들의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써내려 가려고 애썼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격렬히 모성이 주는 어려움과 씨름했고, 결국 굴레에서 벗어났다. 일과 양육을 겸하는 사이 그들은 배우고 싸우고 고통받고 성장한 것이다. 이 책은 아이가 있는 여성이 일로도 성취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롤모델을 제시해줄 뿐만 아니라 예술적 영감도 듬뿍 안겨준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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