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처럼 살아온 23·21·14살 세자매…'이제야 사회 속으로'(종합)
제주도, 출생 미신고 아동 조사 광역전담기구 가동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출생 신고 없이 유령처럼 살아온 10대·20대 세 자매,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아이 입양 판매 게시글'.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일찌감치 출생 미신고 관련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제주도의 사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3일 제주도에 따르면 2021년 12월 당시 제주에서는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유령처럼 살아온 23살, 21살, 14살 세 자매가 뒤늦게 확인됐다.
어머니인 40대 여성 A씨는 세 자매 모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때까지 세 자매는 의무교육이나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주민센터 관계자는 "A씨가 첫째 딸은 병원에서 둘째와 셋째는 집에서 출산했는데,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바로 하지 못했다"며 "나중에는 출생신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 자매가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A씨가 제주시의 한 주민센터에서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에 대한 사망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배우자에 대한 사망신고 당시 주민센터를 같이 갔던 딸들이 "우리도 출생 신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이를 통해 세 자매가 호적에 올라가 있지 않은 사실을 인지한 주민센터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다만 세 자매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학대는 없었던 것으로 조사돼 A씨는 형사처벌을 면했고 딸 등에 대한 보호처분이 내려졌다.
그 뒤 세 자매는 지난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세 자매의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 부양을 위해 일터에 나가고 있고 가족들은 주민센터 등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로 16살이 된 세자매의 막내는 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앞서 지난 2020년 10월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에 20만원의 판매 금액과 함께 '아이 입양합니다. 36주 되어 있어요'라는 제목의 게시 글이 올라와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미혼모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기 입양 절차를 상담받던 중 입양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려 화가 났다"며 "하지만 이런 게시글을 올린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정상적 출산이 아니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후 B씨의 아이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3월에는 생후 3일 된 신생아를 산후조리원에 유기하고 잠적한 30대 부부도 경찰에 검거된 바 있다.
이은성 제주보육원 입양센터 팀장은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하게 되는데 그 관리를 질병관리 관련 부서에서 하고, 출생 신고는 복지 관련 부서에서 별도로 진행하고 있어 통합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며 "병원 예방접종 기록으로 출생 사실을 확인하고 출생 신고를 정부가 책임진다면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 아동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출산은 미혼모, 혼외자 출산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 출생 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며 "여러 곳으로 흩어진 제도들을 하나로 통합해 출생 즉시 국가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은 제주도는 최근 불거진 출생 미신고 아동 관련 소식을 접하고 보건복지부로부터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자료를 받는 대로 아동 학대 관련 광역전담기구를 가동키로 했다.
이 광역전담기구는 제주도와 제주시·서귀포시, 제주도교육청, 경찰, 의료기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위원회 성격의 기구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제주에는 2015∼2022년 8년간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가 16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16명은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예방접종을 위해 임시 신생아 번호를 부여받아 출생 사실이 기록됐지만, 실제로는 제주도에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도는 지난 2021년 말 세자매 사건 이후 지난해 3∼4월 장기간 출생 미신고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조사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위기를 겪는 1만4천13가구 2만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추가적인 출생 미신고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제주도는 밝혔다.
제주도 관계자는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이 부여하는 임시 신생아 번호를 지방자치단체가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각 읍·면·동에서 수소문을 통해 출생 미신고자를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해 조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다만 제주도는 이 사건 이후에 줄곧 중앙 정부에 출생 통보 관련 법을 국회에서 처리해 직권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하고, 장기 출생 미신고 아동의 경우 재판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해왔다고 전했다.
출생통보제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현재 부모가 하도록 한 신생아 출생 신고를 병원이 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세자매 사건 이후 출생 미신고 사례뿐 아니라 행정·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도민을 발굴해 지원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제도적 미비점을 개선하려는 중앙정부·입법기관의 노력이 절실하고, 동시에 일선 지자체들이 발로 뛰며 위기 가구를 찾아 나서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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