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버린 2236명의 아이들…'출생통보제' 지연이 부른 비극

최현만 기자 2023. 6. 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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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서도 출생통보제 발의…현재도 1년 넘게 계류
미국·영국·독일 등은 의료기관 ·출생시설에 통보 의무 부여
ⓒ News1 DB

(세종=뉴스1) 최현만 기자 = 출생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들이 살해당했거나 유기됐던 사실이 최근 하나둘 드러나면서 이번 영아 살해 사건은 '출생통보제' 도입이 늦어지는 등의 국가 제도 미비가 부른 비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출산 후 즉시 출생 등록을 강조하고 있고 해외 선진국들도 이미 출생통보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의료계 협의 등으로 아직도 관련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23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날 "경찰청·질병관리청·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아동의 소재·안전 확인을 위해 전국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경우 출생 사실이 지자체에 통보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해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이 지방자치단체에 생사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출생미신고 영·유아 23명 중 일부가 살해당했거나 유기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랴부랴 대응책을 마련한 것이다.

앞서 감사원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아살해 등 아동학대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이번 정부의 대책은 '뒷북'에 가깝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이미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해 가족관계등록법 정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년이 넘도록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또 출생통보제는 19대 국회였던 지난 2015년에 이미 부좌현 의원 대표발의로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우리나라 출생신고제는 수년간 연구 보고서 등을 통해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법상 부모가 아이를 출산하고 1개월 내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키지 않더라도 과태료를 5만원 내도록 하는 게 전부다.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을 행정기관에 통보할 의무도 없다.

우리나라가 1991년에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 권리와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대법원 역시 2020년 6월 판례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진다"라며 "이러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생통보제가 없다 보니 아이의 목숨과 관련된 결정들이 어른들의 손에서 불법으로 이뤄질 수가 있는 것"이라며 "출생통보제가 있어야 아이의 존재가 인정되고 관련된 지원이 이뤄질 수 있어서 범죄 등 사회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을 지자체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아 2명을 출산 직후 살해한 친모 A씨의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A씨는 2018년 11월, 2019년 11월에 각각 아이를 출산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수원시 자신의 거주지 냉장고에 보관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또 최근 영아 유기 혐의를 받는 B씨도 수사기관이 조사 중이다. B씨는 아이를 출산하고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인터넷에서 아이를 데려간다는 글을 보고 아이를 넘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B씨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포렌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 News1 DB

한국법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출생을 통보하도록 한 해외 나라들은 많다. 미국은 주마다 규정이 각기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병원 등 기관이 일차적인 출생신고 의무를 지도록 한다. 해당 기관에서 출생 정보가 기록된 증명서를 지역 신분담당관에게 제출하도록 한다.

영국 역시 아동의 출생이 병원시스템을 통해 해당 관할당국에 통지되도록 한다. 출생아에게 의료보장번호가 부여되고 출생사실은 전산정보로 자동 저장·관리된다. 호주도 마찬가지로 출산 시 의사, 조산사 등 의료기관 관계자가 일차적으로 출생통보 의무를 진다.

독일은 부모의 '구두신고'와 출생시설 장의 '서면신고'가 출생 후 1주일 이내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출생통보제에 대해 의료계의 일부 반발이 있는 상황이다. 일부 산부인과 단체는 지난 4월 "아동 보호를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긴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협의를 거치고 있으며 출생통보제 법안이 늦어도 7월에는 국회를 통과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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