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모두 닫으란 소리"…최저임금, 소상공인 외면한 채 노동계 뜻대로 가나

장유미 2023. 6. 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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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 표결서 '업종별 차등적용' 부결…노동계, 최저임금 시간당 1만2210원 제시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은 외면한 채 26.9% 인상하라는 것은 모두 문 닫으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을 업종별 구분 없이 단일하게 적용키로 하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경영계와 소상공인들은 허탈해 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자신들의 뜻대로 결정이 되자 환영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노동계가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으로 시간당 1만2천210원까지 요구하고 나서자 경영계는 뿔이 단단히 난 모양새다.

2024년도 최저임금 동결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사진=소상공인연합회]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내년에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할지를 놓고 투표한 결과, 반대 15표, 찬성 11표로 부결됐다.

투표는 근로자위원 8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망루 농성'을 벌이다 체포될 때 흉기를 휘둘러 진압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김준영 근로자위원(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빠졌다.

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을 일괄적으로 정하는 현행과 달리, 산업별로 다르게 정하는 방식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상으로도 도입할 수 있지만, 최저임금제가 첫 시행된 1988년에만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당시 최저임금위는 벌어진 임금 격차를 고려해 음료품·가구·인쇄출판 등 16개 고임금 업종에는 시급 487.5원, 식료품·섬유의복·전자기기 등 12개 저임금 업종에는 시급 462.5원을 적용했다.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이듬해부터 현재까지는 전 산업에 단일 적용되고 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을 도입해 숙박·음식업 등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노동계는 이 같은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반한다고 맞섰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팽팽히 맞섰지만, 주로 학자들로 이뤄진 공익위원들이 이번에 반대표를 많이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경영계는 큰 실망감과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부결 직후 낸 입장문에서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며 "합리적 기준에 대한 고려와 일률적 시행에 따른 부작용 등을 고민한 끝에 제시했는데도 또 다시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분 적용이 무산된 이상 내년 최저임금은 반드시 현재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운 업종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법률에 명시된 사업별 구분적용이 조속히 실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가 구분적용에 필요한 보다 정치한 통계적 기반을 시급히 구축해줄 것을 강하게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소상공인들도 크게 분노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과 울분을 금할 길이 없다"며 "전국 소상공인의 절규와 간절한 호소를 결국 이번에도 외면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저임금법 4조1항에 근거하는 '구분적용'에 반대한 최저임금위원들에게 모든 업종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결정인지, 우리나라가 법치국가가 맞는지,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고용을 포기하거나 가게 문을 닫으라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최임위의 결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며 최저임금 동결이라는 소상공인 생존권과 직결된 마지막 보루를 사수하기 위해 끝까지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이 지난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불어 노동계는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으로 시간당 1만2천210원을 제시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시급 9천620원·월급 201만580원)보다 26.9% 많은 금액이다.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월 노동시간 209시간 적용)은 255만1천890원이다.

근로자위원들은 인상의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소비 활성화 ▲노동자 가구 생계비 반영을 통한 최저임금 인상 현실화 ▲악화하는 임금 불평등 해소 ▲산입 범위 확대로 인한 최저임금 노동자 실질임금 감소 등을 내세웠다.

근로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제도의 근본 취지, 최저임금 노동자의 가구원 수 분포, 국제기구 권고, 최저임금위 제도 개선위원회 의견 등을 고려하면 가구 생계비가 최저임금 결정의 핵심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물가 전망치로 환산한 내년도 적정 생계비는 1만4천465원이다. 노동자 가구의 경상소득 대비 노동소득의 평균 비율은 84.4%인데, 1만4천465원의 84.4%는 노동계가 이날 제시한 1만2천210원이다.

최저임금 심의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제출한 최초 요구안을 놓고 그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용자위원들은 이날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는데, 표결 직후 사용자위원들이 반발하는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종료됐다.

노동계가 제시한 최초 요구안에 대해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경총 전무는 반대의 뜻을 밝혔다.

류 전무는 모두발언에서 "올해 최저임금은 9천620원이지만, 주휴수당까지 고려하면 이미 1만1천500원을 넘어섰다"며 "여기에 5대 사회보험과 퇴직급여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최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 대부분은 최저임금의 약 140%에 달하는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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