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지나도… 유물처럼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어린이 책]

2023. 6. 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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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에는 오랫동안 다른 누군가가 살았다.

이곳에서 그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겹겹이 쌓인 삶과 우리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발굴조사단을 "유물을 후비적거리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대고 일부에서는 유물이 나오면 다른 사람이 알기 전에 깨부수려 한다는 소문까지 돈다.

무엇보다 결코 흙먼지가 될 수 없는 것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문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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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한성이 서울에게
이현지 글·김규택 그림│비룡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에는 오랫동안 다른 누군가가 살았다. 이곳에서 그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겹겹이 쌓인 삶과 우리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성이 서울에게’는 그 연결고리를 찾고 의미를 밝히는 동화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골든아파트의 터파기 공사는 문화재청의 반대로 거듭 지연되고 있다. 상당한 양의 유물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발굴 후에 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개발사업자들은 느리고 까다로운 발굴 절차를 염려하여 지레 반발한다. 발굴조사단을 “유물을 후비적거리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대고 일부에서는 유물이 나오면 다른 사람이 알기 전에 깨부수려 한다는 소문까지 돈다. 2년 전 오빠를 잃고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 ‘울’이는 이 동네에 산다. 울이네 집에는 백제 때부터 땅속에 있었다는 ‘성’이라는 어린 귀신이 함께 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성이는 울이의 아픔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이해할 뿐 아니라 파묻힌 유물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금은 도로가 되어버린 곳 아래에 이름난 칠기 공방이 있었다는 걸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울이는 성이와 친구가 되면서 이 땅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왕의 무덤은 근사하게 복원하면서 평민의 유물은 함부로 대하는 것이 온당한지 질문을 던진다. 사랑했던 오빠의 유품이 보통 사람의 것이라는 이유로 하찮게 취급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린 귀신 성이가 구천을 떠돌며 살고 있는 이유도 가족의 사랑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성이는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서 사랑했던 마음까지도 흙먼지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울이와 성이의 우정은 발굴을 둘러싼 사건들을 파고들며 더욱 깊어진다.

역사동화 대부분이 과거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백제의 어린이가 2023년의 한국을 구하러 오는 역사동화다. 무엇보다 결코 흙먼지가 될 수 없는 것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문학이기도 하다. 204쪽,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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