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는 빈약, 논리는 비약… ‘과대포장’ 자기계발서[북리뷰]
제시 싱걸 지음│신해경 옮김│메멘토
그릿·넛지 등 현대심리학 히트작
‘마음먹기’ 강조한 비슷한 이야기
병폐 불러온 사회 구조는 외면
‘개인의 최적화’에만 초점 맞춰
군인 PTSD치료 ‘긍정심리학’
효과 입증 안 된채 비용만 낭비
美 학교 점령했던 ‘자존감 열풍’
교육적 성취 없이 자취 사라져
그릿(GRIT), 넛지(Nudge), 마인드셋(Mind set), 파워 포즈(Power pose), 그리고 자존감과 긍정심리학…. 주로 미국에서 시작된 후, 세계적으로 유행인 심리학 아이디어이자 행동과학 키워드다. 이를 다루는 책들은 한국에서도 이미 베스트셀러 자리를 훑고 지나갔으며, 창시자들의 TED 강의는 가공할 조회 수를 자랑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광풍처럼 불고 있는 ‘자기 계발’ 방식을 떠올려 보면, 놀라울 것도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미러클 모닝’ 같은 것 말이다.
책은 이 현대 심리학의 초대형 히트작들이 포장만 조금씩 달리했을 뿐, 결국 ‘마음먹기’를 강조한 ‘같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비난이나 지적은 심리학계 안팎에서 줄곧 지속됐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그릿’은 어떤 성과가 사람의 지능이나 재능, 환경이 아닌 다른 것, 즉 그릿으로 요약된 ‘성격적 장점’에 영향을 받는다며, 이를 발전시키라고 한다. 결국 그릿은 성실, 끈기, 노력이다. 다만 ‘그릿’이 좀 더 새롭게 느껴질 뿐이다. 또 ‘마인드셋’은 성공하는 사람들이 지닌 ‘태도와 자세’다. 이 또한 성실, 끈기, 노력 등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마인드셋’이라 해야 훨씬 흥미로워 보일 뿐이다.
책은 성과와 성장, 성공을 끝없이 요구하는 21세기에 ‘지배적 사상’이 되어버린 이 자기계발 도구들을 전방위적으로 비평, 비판한다. 저자는 이들이 얼마나 근거가 빈약하고 논리에 허점이 많은지 파고들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그것이 이 책이 탄생한 가장 큰 이유다. 이 아이디어들은 개인의 성장을 돕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약간의 심리적 ‘개입’으로 사람이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나아가 각종 사회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귀결된다. 이는 정책적으로도, 또 학술적으로도 해악이다. 인간의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더 크고 구조적인 힘을 무시하고, 우리의 문제 해결 능력을 방해하고, 더 넓고 깊은 연구를 단념시킨다. 물론, 이런 ‘마음의 가짜약’이라도 필요한 시대 아니냐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한 ‘자기 계발’ 의 인기는 1980∼1990년대 미국 교육 현장을 휩쓸고, 2000년대 이후 국내 출판 시장에서도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자존감’ 열풍과도 관계가 있다. 책 역시 ‘자존감 장사’라는 제목으로 첫 장을 시작한다. 당시 미국 학교에는 ‘자존감 왕국의 매력덩이들’이라는 아동용 도서가 곳곳에 비치돼 있었는데, 이 책은 ‘나는 매력덩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치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학업 성취도가 올라가며 10대 임신과 범죄, 심지어 공해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매력덩이’들이 한동안 교실을 점령했으나 해결된 것은 없다.
다른 개념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최근 논문을 인용하며 ‘그릿’의 오류를 지적하는데, 실제로 교육적 성취나 취업 시장에서의 성공 등에는 그릿이 강조하는 ‘성격적 장점’보다는 지능이 13배에서 최대 90배까지 기여한다는 그것이다. 또한 어떤 일을 끝까지 완수할 확률은 ‘성실성’을 강조한 전통적 예측 도구가 ‘그릿’보다 훨씬 유용했다. ‘긍정심리학’은 어떠한가. 이 개념은 ‘포괄적 군인 건강’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며, 미국 육군과 거액의 계약을 맺었으나, 아직도 효과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나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책은 PTSD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료법이 있는데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긍정심리학 같은 프로그램이 채택되는 것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왜 이렇게 허술하고 수상쩍은 유사 행동과학과 심리학 이론들이 서점가와 학교,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일반 시민의 일상까지 점령하게 됐을까. 책은 여기서 효율성과 경제성, 그리고 이것으로 이득을 얻는 집단을 언급한다. 사람의 뇌는 복잡한 것을 꺼리고, 단순한 이론과 명제에 더 빨리 작동한다. 그런데 뭐든 연구하기 좋아하는 심리학자들이 새로운 말과 이론을 쉬운 표현으로 내놓았고, 큰 비용이 들지 않고 정치적 논란도 없는 이 ‘손쉬운 해결책’에 전문가와 미디어가 열광하며 퍼 날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생각하는 리더’들로 구성된 ‘영향력 있는 생태계’라고 규정했는데, 결국 이들이 ‘생각 없이’ 작동시킨 생태계가 가장 큰 원인이다. 오죽하면 ‘그릿’을 주창한 사회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가 “그릿 담론이 내 손을 이미 떠나 버렸다”며 이제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았겠나. 그 생태계 안에는 하버드나 펜실베이니아, 프린스턴, 예일 같은 저명한 아이비리그 학자들이 있었고, ‘아웃라이어’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맬컴 글래드웰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그리고 전 세계 출판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책 추천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21세기 심리학만큼 성공한 사회과학 분야도 없으며, 그만큼 학문의 품위가 떨어진 분야도 없다고 조소한다. 그러면서, 결과가 알려진 뒤 가설을 세우는 연구 관행이나 설익은 결과가 쉽게 출판되는 연결 고리 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학계 자정 노력이 절실한 것. 책은 연구 사전 등록제와 데이터 공유 조치 같은 최근 미국의 개혁적인 신진 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풀뿌리 노력’ 등을 소개하며 거기에 희망을 건다. 그렇다면 이미 작은 결실을 거둔 셈인데, 이 책이 바로 그 증거다. 460쪽, 2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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