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 아닌 시끌벅적 번화가에 '내 집' 찾는 여성들…왜

이기범 기자 2023. 6. 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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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0명중 4~5명, 대중교통서 성폭력 두려움 느껴
ⓒ News1 DB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자취 생활 9년차인 배모씨(33·여)는 조용한 동네 대신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선호한다. 최근까지도 역세권과 상권이 겹치는 곳에 거주했다.

한밤중에도 번쩍이는 네온사인, 취객들의 소음, 높은 집값 등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배씨가 이를 감수하는 이유가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성범죄로부터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배씨는 "불편해도 차라리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사는 게 더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성범죄가 잇따르자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은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2022년 성폭력 안전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묻는 항목에서 여성 63.4%는 '밤늦게 혼자 다닐 때 성폭력을 겪을까 봐 두렵다'고 답했다.

또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의 방문이 무섭다'(52.9%), '택시, 공중화장실 등을 혼자 이용할 때 성폭력을 겪을까 봐 걱정한다'(51%) 등 모든 문항에서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배씨는 "혼자 사니까 누군가 예고 없이 방문해 벨을 누르면 숨죽이고 사람이 없는 척할 때도 많다"며 "건물 관리실에서 소독하러 한 달에 한번 방문하는데 남성이 와서 그다음부터는 소독도 안 받고 있다. 모르는 남성과 몇 분 동안 좁은 공간에 있는 상황 자체가 공포감이 든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는 택시·지하철·버스 등이 꼽힌다. 응답자 10명 중 4~5명이 대중교통 내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30·여)는 "짧은 치마를 입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핸드폰 하면서 걷고 있는데도 앞서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뒤돌아보니 고개를 꺾어 치마 속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며 "그 뒤로 짧은 치마도 입지 않는 건 물론 지하철 올라갈 때 항상 누가 있는지 살피고 간다"고 토로했다.

이런 두려움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평생 경험한 성폭력 피해율을 살펴보면 여성 16.6%는 '성기 노출 피해', 9.2%는 '통신매체를 이용한 피해', 7%는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 '불법촬영 피해'와 '강간(미수 포함) 피해' 경험률은 각각 0.4%다.

반면 남성은 '통신매체를 이용한 피해'가 10.3%로 가장 많았고 '성기노출 피해' 2.4%, '성추행 피해' 0.9% 순이다. '강간(미수 포함) 피해'는 0%였다.

그러나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통념은 여전했다.

성폭력 관련 인식과 통념을 살펴보면 응답자 52.6%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피해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고 답했다.

이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46.1%),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39.7%),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32.1%),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까지 허용한다는 뜻이다'(31.9%) 등 순이었다.

대체로 남녀 모두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동일 연령대에서도 여성보다 남성의 성폭력 관련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안전 실태 조사는 3년마다 실시하는 국가승인통계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전국 만 19~64세 이상 성인 남녀 1만2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한 성폭력 무고, 피해자다움, 동의 등에 대한 고정관념은 성폭력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하고 2차 피해를 발생시키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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