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곧 종말이 와도, 고양이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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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과 띠지만 보고는 또 한 편의 다정한 에스에프(SF)려니 생각하고 뒤로 미뤄둘 뻔했다.
이런 경향성의 작품 중에서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는 한국 문학의 걸작들이 나왔지만, 이제는 작품 수가 늘자 패턴이 있는 장르로 굳어지며 개별성을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인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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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예소연 지음 l 허블 l 1만500원
소설의 제목과 띠지만 보고는 또 한 편의 다정한 에스에프(SF)려니 생각하고 뒤로 미뤄둘 뻔했다. 이런 경향성의 작품 중에서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는 한국 문학의 걸작들이 나왔지만, 이제는 작품 수가 늘자 패턴이 있는 장르로 굳어지며 개별성을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러기에 읽고 소개할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이 세 명의 늙고 병든 할머니 용병이라는 데 끌리지 않았다면.
여성 노인이 주인공인 에스에프는 있었지만,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노인이 미래 세대에게 지혜를 전수하는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모험을 펼쳐나가는 작품으로서 개성을 획득한다. 암울한 미래, 전쟁에서 착취당한 용병 ‘워커’로 평생을 살아온 아샤, 말리, 창은 불모지인 사막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그들을 받아줄 커뮤니티를 찾아야 한다. 세 사람은 오래전 자신들을 돌봐주었지만 떠나고 만 상사인 정을 찾아 도움을 받으려 한다. 그렇게 사막을 헤맬 때 얼룩이 섞인 노란 고양이가 나타난다. 오래전 기억 속 진짜 고양이를 닮은 로봇 고양이 치즈가 세 사람을 동굴 속의 공동체로 인도한다.
인간의 기억을 받았지만 그 데이터를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만든 로봇 고양이들은 이제 바리케이드 너머 안전 구역 트라움 속에 갇혀서 노동하는 동족 로봇들을 구하려고 한다. 세 명의 인간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만이라도 안전한 트라움으로 도망칠 것인가? 함께 싸울 것인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비인간에 대항하는 인류애는 이 삭막한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의미가 있기는 한가? 이 소설에는 우정과 연대만이 있지 않다. 오랜 전우도 배신할 수 있고, 믿고 의지했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첫 문장,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도망쳐야 한다”의 역설은 존재 사이의 어떤 결합도 그렇게 단단하지 않으며, 소통에는 결락이 있다는 작가의 세계 인식에 기인하고 있다.
이처럼 애정이 부서지고 연결이 끊기는 “못돼먹은 세계” 속에서도 확실한 대답은 하나다. 우리는 인간이든 아니든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지만,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착취당하는 존재는 없어야 한다”는 것(159쪽). 이 소명을 인간의 마음으로 행하든 고양이의 마음으로 행하든 상관없다. 인간에게 학대당하고 버림받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고양이의 감각으로 보면 지구는 또 다른 공간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아포칼립스 문학이 점점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걸 깨닫는다. 전지구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의 시기가 발을 맞추면, 삶이 그림자처럼 투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원인이 무엇이든 어쨌든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며 체념하기가 쉽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든, 어느 나이에서든 우리는 살아 있을 때까지는 살아남는다. 최근 노화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어서, 딜런 토머스의 시를 다시금 읽었다. “좋은 밤을 향해 온화하게 가지 말라.” 늙어간다는 기분이 들 때 늘 되새기는 말이다. 곧 종말이 온다고? 그래도 온화하게 가지 않는다. 사막의 자매들, 아샤, 말리, 창처럼 모두가 싸운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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