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전쟁이 지울 수 없는 ‘아빠의 사랑’

한겨레 2023. 6. 23.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멀리서 아빠를 발견한 어린이가 "아빠!" 하고 소리치며 공동현관으로 달려왔다.

"아빠 그거 뭐야?" "응, 옥수수 샀어." "노란 거? 단 거? 맛있겠다!" 까불며 뛰는 어린이를 조용히 시키는데, 거울에 비치는 아빠 얼굴에 사랑이 가득하다.

나도 어린이의 아빠도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폭포처럼 사랑을 쏟아붓는 장면도, 아빠가 조곤조곤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도, 그걸 알고 어린이가 의기양양해지는 장면도 모두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조개맨들
신혜은 글· 조은영 그림ㅣ 시공주니어(2015)

멀리서 아빠를 발견한 어린이가 “아빠!” 하고 소리치며 공동현관으로 달려왔다. 태권도장에서 오는 차림이다. 아빠는 아이를 가볍게 타박했다. “왜 뛰어와? 이렇게 더운데.” 어린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난데없이 오늘 배운 동작을 선보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빠 그거 뭐야?” “응, 옥수수 샀어.” “노란 거? 단 거? 맛있겠다!” 까불며 뛰는 어린이를 조용히 시키는데, 거울에 비치는 아빠 얼굴에 사랑이 가득하다. 탈 때는 데면데면하던 어린이가 내릴 때는 큰 소리로 내게 인사한다. 나도 어린이의 아빠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이는 또 뛰어서 집으로 갔다. 이렇게 더운데.

부모와 자녀가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좋다. 엄마가 폭포처럼 사랑을 쏟아붓는 장면도, 아빠가 조곤조곤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도, 그걸 알고 어린이가 의기양양해지는 장면도 모두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행복이 늘 그렇듯이 그런 장면은 주로 일상에 있다.

‘조개맨들’은 강화도 흔다리 서쪽에 있는 들로, 조개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개맨들>은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황영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이 책에 ‘사랑’이라는 낱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 영재가 충분한 사랑 속에 살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나는 아빠가 일하는 방 앞에서 논다. 왜냐하면 아빠가 보이니까. 아빠가 나 보고 웃으니까.” 아빠는 밤나무 가지를 영재 발에 맞게 다듬어 신발을 만들어 준다. 영재를 위해 몰래 눈사람을 만든다. 집에 웃풍이 있어서 영재 춥다고, 서울 가서 목 부분이 동그랗게 파인 이불을 사 온다.

영재는 그런 사랑을 믿고 무럭무럭 자란다. 친구와 보름달이 뜰 때까지 놀고, 밤나무에 대고 인사를 연습하면서 입학식을 기다린다. 그러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날들은 전쟁으로 갑자기 텅 빈 것이 된다. 군대에 끌려간 아빠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야기 끝에는 영재의 아버지, 그러니까 황영자 할머니의 아빠 사진이 실렸다. 1947년, 시계방을 하는 젊은 영재 아빠가 카메라를 당당하게 보고 있다. 영재에게 아빠는 언제까지나 그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영재는 할머니가 되었어도 아빠를 그리는 순간에는 늘 어린이가 될 것이다.

이 그림책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담은 한편으로, 그 비극을 견디게 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재는 슬픔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힘찬 붓칠, 정감 있는 색, 다양한 구도로 그려진 그림이 주제를 그대로 표현한다.

작은 일이 어린이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길에서 본 어떤 사람, 우연히 겪은 사건, 사소한 대화가 오래도록 어린이에게 남는다. 그러니 한국전쟁이 어린이의 삶에 남긴 상흔은 얼마나 크고 깊은가. 다른 형태의 재난 속에 사는 오늘, 어린이의 하루하루가 더 많은 사랑과 행복으로 꼼꼼하게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