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16만원, 딱 먹고살면 끝…포기된 평균의 삶
2022년 6월 기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은 400만1천원, 중위임금은 314만6천원이었다.(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저축과 부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혼단신 가구의 지출만을 집계한 실태생계비는 241만원이었다.
하지만 <한겨레>가 22일 확보한 최저임금 130% 안팎의 민주노총 조합원 17명의 4월 한달 가계부를 보면, 월평균 219만5531원을 벌어 229만7109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이 마트, 콜센터, 돌봄, 학교 비정규직 등 저임금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1156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월평균 186만원(세후)을 번다고 답했다. 이들은 “저임금으로 무엇을 포기하였는가” 묻자, “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노후 대비와 저축” “만남과 인간관계”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 등을 적었다.
이들 1173명 자료에서 엿보이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로서 한국 사회 평균과 격차가 벌어질 때 느끼는 미묘한 불안이다. 지난해 저임금 노동자 비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등 임금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가 익숙한 경계를 따라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여 만에 악화했다. 아직은 ‘조짐’ 정도로 볼 여지도 있지만 불평등의 완화, 사회적 포용성의 확대, 그를 통한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합의된 지향이 흔들리는 기색이다. 관련한 논의는 전처럼 활발하지 않다. <한겨레>는 이들 가운데 이번 조사에 참여한 청소, 경비, 판매, 돌봄, 제조 분야의 저임금 노동자 5명을 만났다.
김재원(49)씨는 2023년 선진국에 이른 한국 사회 평균적 삶의 조건을 “밥을 먹는 것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걱정하지 않는 삶”으로 규정했다. 재원씨는 지난 4월 한달간 경기도 부천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하루 8시간 경비 업무를 하고, 휴일근무수당 등을 더해 216만2410원(세후 기준)을 벌었다. 그리고 201만6650원을 지출했다. 14만5천원가량 흑자다. 스스로 “그래도 딱 먹고사는 만큼은 버는 것 같고, 저보다 더 힘든 노동자가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삶은 정말 괜찮았던 걸까?
2013년부터 10년 동안 두 배(4360원→9320원)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이 최소한 상용직으로 하루 8시간 일하는 1인 가구 노동자에게선 ‘근로’와 ‘빈곤’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가까스로 떼어낸 것은 사실이다. 재원씨도 월급 216만원으로 “살 수는 있다”고 했다.
다만 재원씨가 한국 사회 평균, “먹고 관계 맺는 데 걱정 없는 삶”을 말하며 힘준 단어는 ‘걱정’이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 인상은 더딘 탓에 재원씨는 최근 걱정하는 횟수가 늘었다. 재원씨의 잣대에 따르면 ‘평균의 삶’에서 한 발짝 멀어진 셈이다. 사소해 보이나, 돌아보면 심각한 대목도 있다.
긴축: 점심 한끼와 과일
서비스연맹이 저임금 사업장 노동자 1156명에게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가장 먼저 줄였거나 줄이고자 하는 항목”을 물어 1, 2, 3순위에 가중치를 부여해 점수를 매겨보니 1위가 외식비, 2위가 식료품비였다. 재원씨의 ‘식사 비용’도 소박하다. 4월 한달 딱 25만원을 썼다. 주로 점심인 외식비로 15만원, 식료품비로 10만원을 지출했다. 노력의 결과다. “줄일 수 있는 게 뻔하잖아요. 주변에 1만원 이하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을 쭉 찾아놨습니다. 별 약속 없을 때는 건너뛰기도 하고요.” 재원씨는 일터 주변 5천원짜리 세무서 구내식당을 즐겨 찾는다.
밥 한끼는 대수롭지 않고 흔한 긴축의 대상이다. 다만 재원씨한테는 ‘불규칙한 식사’가 남긴 질병이 있다. 2016년 ‘크론병'(소화기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소화물 택배 일을 할 때 식사를 자주 걸렀죠. 그 전까지도 계속 비정규직이었으니까, 택배 일 할 때 돈을 가장 잘 벌기는 했는데.” 의사는 병에 걸린 이유로 불규칙한 식사를 들었다. 재원씨의 4월 카드 지출 내용에는 4일과 5일 점심 지출 기록이 없다. 10일엔 2천원짜리 커피 한잔을 사 먹은 기록뿐이다. “수술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부담스러우니까요.” 지난해 기준 외식비 물가는 한해 전보다 7.7% 올랐다. 재원씨 임금은 한해 전보다 2% 올랐다. 그 격차만큼 걱정이 커졌다.
초등학교 청소노동자 김양자(53)씨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 ‘평균적 삶’은 “과일을 마음 편히 사 먹을 수 있는 삶”이다. “우리 가족이 다 과일을 좋아해요. 마트에서 조금씩 사면 더 비싸니까 박스째 사 먹었는데…. 우리만 먹는 건 아니고 여기 선생님들 나눠 드리고 그러는 건데.” 양자씨는 한달 194만7740원을 번다. 지난 4월 그 가운데 11만7천원을 ‘과일 구매’에 쓰고 말았던 배경을 길게 설명했다. 끝내 양자씨도 평균 포기를 선언한다. “아무래도 줄여야 한다면 과일을 가장 먼저 줄여야겠죠.”
포기: 고양이와 제사상
서비스연맹은 설문조사 응답에 주관식 문항을 담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삶으로, 포기한 것”을 적도록 했다. 가족이 31회, 자녀가 14회, 부모가 10회, 지인이 5회 적혔다. ‘관계’에 드는 비용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재원씨는 애초 2인 가구였다. 3년 전 함께 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포기한 것의 목록에서 재원씨도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줄였어요.”
현재도 둘이 산다. 어머니를 보내고 2년 뒤 고양이 ‘꾸미’를 만났다. 4월29일 고양이 사료에 5만4천원을 썼다. “처음에 키울 때는 좋은 사료를 줬는데 점점 그러지 못하게 돼요. 괜히 내가 키워서….” 꾸미와의 관계가 무겁다. “더 좋은 것 많이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안쓰러움이 있죠. 내 아이였다고 생각하면 아빠로서 정말로 많이 마음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힘든 마음을 울산의 한 화학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강유형(37·가명)씨가 말했다. 아이가 네살이다. “제 옷은 전혀 사지 않고 아낀다고 아끼는데도 아들 옷을 많이 못 사 줍니다. 그래도 아들이 먹는 것만큼은 끝까지 포기 안 하려고 해요.” 유형씨는 한 주 52시간을 꽉 채워 일할 때 수당 등을 합쳐 281만원을 번다. 그나마 6년 근속을 한 덕에 최저임금 시급보단 많은 시간당 1만900원을 받아 가능한 임금이다. 저임금을 극복하려 주 52시간을 꽉 채워 긴 시간 노동하는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 또한 “미안하다”고 했다.
미래: 빚과 치과
서비스연맹이 “최저임금이 250만원으로 올랐을 때 가장 희망하는 지출처나 하고 싶은 일”을 묻자 49.6%가 ‘부채 상환’이라고 답했다. 저축이 18.3%로 뒤를 이었다. 최저임금 결정 때 생계비 반영의 기준이 되는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 생계비는 부채와 저축 같은 금융 비용과 미래 대비는 담지 않는다.
재원씨 한달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 또한 주택담보대출 이자다. 2018년 어머니를 좀더 좋은 곳에 모시려 집 사느라 생긴 빚으로, 변동금리다. 재원씨는 “4년 전에는 한달 이자 49만원을 냈는데, 한때 74만원까지 나오다가 지금은 69만원”이라고 했다. 고금리는 고물가보다 더 큰 부담이다. 민주노총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저임금 노동자 17명의 가계부채 평균은 8225만원이었다.
5천원짜리 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가끔 밥을 걸렀으며, 고양이 사료를 덜 좋은 것으로 바꾸고, 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음식 가짓수를 줄인 재원씨 한달 살이 결과 14만5천원이 남았다. 그의 목표 저축액은 한달 30만원이다. “이가 많이 썩었는데 견적이 230만원 나왔어요. 모아둔 돈이 없어 치료는 그냥 포기했습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저축을 30만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예기치 못한 일상의 사건과 겹쳐보자, “딱 먹고사는 만큼은 버는 것” 같았던 재원씨 한달 월급이 돌연 초라해졌다.
장현은 방준호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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