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기후위기의 ‘최후 보루’에서 툰베리가 보내다

최재봉 2023. 6. 2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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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폭과 깊이 갖춘 성년 툰베리
전문가 100여명과 함께 쓴 책 출간
“기후위기 근본원인은 불평등 구조”
언론 향한 당부와 함께 희망 역설
스웨덴의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이달 9일 스톡홀름의 스웨덴 의회 앞에서 마지막 금요 ‘학교 파업’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년 8월20일부터 매주 금요일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미래를 위한 금요일’ 모임을 결성하기도 한 툰베리는 이날 졸업과 함께 학교 파업 시위를 251회로 마감했다. 스톡홀름/로이터 연합뉴스

기후 책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지성들과 함께 쓴 기후위기 교과서
그레타 툰베리 외 지음, 이순희 옮김 l 김영사 l 3만3000원

21세기 환경 운동의 아이콘 그레타 툰베리가 5년 간 이어 오던 ‘학교 파업’ 시위를 중단했다. 학교 졸업일이었던 이달 9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의회 앞에서 연 251번째 시위가 그의 마지막 시위가 되었다. 2018년 8월20일 열다섯 살 소녀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 적힌 흰색 팻말을 들고 같은 장소에 선 이래 매주 금요일 시위를 이어 온 툰베리가 이제 성년이 된 것.

그가 전 세계 과학자, 작가, 언론인 등 100여 명에게 글을 청탁해 받고 자신도 17편의 글을 보태 만든 <기후 책>은 지난해 말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어 주요 매체들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히는 등 호평을 받았다. 마거릿 애트우드, 토마 피케티, 나오미 클라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같은 유명인들이 기꺼이 툰베리의 청에 응했다.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 얼어붙은 메탄 거품. 김영사 제공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제목에 어울리게 이 책은 기후위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만물의 출발점”인 이산화탄소가 평형 상태를 벗어나게 되면서 오히려 인간과 지구 생명을 위협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출발해, 온난화에서 비롯된 극한 기후 상황과 생태계 파괴의 현실, 그것이 인간과 다른 생명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눈앞에 닥쳐온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글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툰베리의 글을 읽어 보면 그가 어리고 당돌한 활동가를 넘어서 어느덧 지성의 폭과 깊이를 갖춘 지도자의 면모를 지녔음을 알게 된다.

러시아연방 추코트카자치구 콜류친섬에서 북극곰들이 버려진 기상관측소 건물을 거처 삼아 살고 있다. 김영사 제공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고 지구를 착취하면서, 자신의 몫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쓰며 살아온 데서 비롯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 탓이다. (…) 이 위기를 불러온 핵심은 이들이 만든 사회경제적 구조다. 심각한 불평등을 낳고 생태계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사회경제적 구조다. 유한한 행성에서 무한한 성장을 이루려는 생각이다.”

툰베리는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소득 상위 10퍼센트의 사람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을 뿜어내며, 소득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이 하위 50퍼센트의 사람들이 배출하는 것보다 두 배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구조. 이것을 정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유한 소수가 배출한 탄소 때문에 빚어진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 현실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이런 터무니없는 불평등 구조를 바꾸는 일과 분리될 수 없는 배경이다.

2017년 8월27일 허리케인 하비가 강타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대규모 범람 사태가 발생해 45번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가 침수되었다. 김영사 제공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야 높아졌지만 그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가 나온 것은 벌써 40여년 전부터였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정부간 협의체)의 1990년 제1차 보고서에서부터 2021년의 제6차 보고서 작성에까지 줄곧 참여한 대기과학자 마이클 오펜하이머(프린스턴대 지구과학·국제문제 교수)는 자신이 1981년에 환경방어기금 소속으로서 기후위기 문제를 처음 부각시킨 이래 1986년과 1988년 미국 상원 위원회 증언을 통해 이 문제를 거듭 경고했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1988년 정부간 협의체가 설립된 뒤에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두 배 넘게 늘었다. “이제껏 인간 활동에서 나온 이산화탄소 총 배출량의 3분의 1이 2005년 이후에 배출”되었다. “몰랐다는 핑계 뒤에 숨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간 협의체 설립 이후 세계 각국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서명한 것을 필두로 1997년 교토 의정서, 2015년 파리 협정까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를 계속 내놓고 있다. 그에 따른 성과가 없지는 않지만, 추세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통계 조작과 ‘가짜 해법’으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기업인들과 정치인들, 탄소 포집술 같은 불확실한 기술에 인류의 운명을 맡기자는 이들이 진정한 해결책을 가로막고 있다. <기후 책> 필자들의 어조가 급박한 것은 기후위기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피하려면 지구 온도 상승이 지금보다 1.5도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합의이지만, “전 세계에서 2030년까지 예정된 화석연료 생산량이 1.5도 목표를 유지하는 데 부합하는 양의 두 배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유엔환경계획 생산 격차 보고서의 전망이다. 그래서 툰베리는 강조한다. “더 이상 타협은 안 된다. (…) 지금, 여기가 우리의 최후 저지선이다. 여기가 우리의 최후 보루다.”

툰베리는 개인의 변화와 시스템의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구조적 차원에서 해야 할 일과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양하게 안내한다. 가령 툰베리는 제 주변에 “영원히 비행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하며, ‘항공 여행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뜻을 지닌 스웨덴어 ‘플뤼그스캄’을 소개한다. 쇠고기 섭취를 줄이거나 포기하고 식물성 음식으로 바꾸는 등의 개인 차원 실천, 화석연료 사용 자동차 운행 금지와 신규 도로 건설 중단, 탄소세 부과와 저소득층 지원 같은 공공 부문의 해법 역시 참고할 만하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툰베리의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기후위기 국면에서 언론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조지 몽비오의 글 ‘언론 미디어의 서사 바꾸기’가 특히 신랄하다. 그럼에도 툰베리는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론인들의 분발을 호소한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언론인으로서, 책의 결론부에서 기어이 희망을 역설하는 툰베리의 말이 안쓰럽고도 듬직하게 다가온다.

2019년 9월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기후위기에 관한 구호를 담은 팻말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희망은 행동하는 것이다. (…) 나는 충분히 많은 사람이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하는 순간 모든 일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풀리기 시작하는 사회적 티핑 포인트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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