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신병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한겨레 2023. 6. 2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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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알약 네 알, 밤에는 세 알을 먹는다.

우울과 불안을 조절하는 약이다.

'이상한' 약을 끊으라는 건데, 엄마는 여전히 내가 우울증과 불안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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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소란한 문장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리단 지음, 하주원 감수 l 반비(2021)

아침에는 알약 네 알, 밤에는 세 알을 먹는다. 우울과 불안을 조절하는 약이다. “너 아직도 그 약 먹어? 정신과 약 계속 먹으면…” 가끔 엄마와 전화할 때면 어김없이 약에서 걸린다. ‘이상한’ 약을 끊으라는 건데, 엄마는 여전히 내가 우울증과 불안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엄마에게 정신병의 세계는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알고 싶지 않은, 두렵고 불길한 세계다.

그 세계에 사는 내 일상은 비교적 단순하다. 정신과에 다녀오면 핸드폰 메모장에 약 일기를 쓴다. 처음 약 일기를 권한 건 먼지다. 같은 병원에 다니는 먼지의 약봉지는 내 것보다 두툼하다. 나란히 약봉지를 들고 병원을 나서던 어느 날, 먼지가 물었다. “승은아, 약 일기 써?” “아니? 그런 걸 써?” “응, 쓰면 좋아. 고통에서 소외되는 기분도 줄고, 나한테 잘 맞는 약도 알 수 있어. 의사와도 약을 타오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조금은 평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 먼지는 내가 먹는 약의 효능을 찾아 메모장에 기록해줬다. 몇 년간 먹던 약의 이름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의 저자 리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약물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초는 두 가지다. ‘자기에게 맞는 약 찾기’, 그리고 ‘(약물 처방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사 찾기’.”(156쪽)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약물은 약물의 역할을 하게 두고, 우리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고. 리단은 우리가 이전의 ‘맑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아진 하루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는 정신병 나라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각각의 병과 그에 따른 관계와 노동의 어려움, 병원과 약물, 행동 지침이 기록되어 있다. ‘축소된 활동 반경 회복하기. 작은 작업에 집중하기. 절대 하지 못하는 것들은 도움 구하기. 질 좋은 휴식을 위해 이불보와 시트, 베갯잇을 세탁하고 건조하기.’ 편견 있는 이가 말했다면 소외감이 들었을지 모를 조언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에게 흐르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함께 살아내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애정으로.

모든 병이 그렇듯 정신병도 다양하며, 같은 병이어도 증상이 일관적이지 않고, 병명에 포함되지 못하는 고통도 많다. 편견 때문에 스스로를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아픔을 소외하는 세계에서 하물며 정신병이라니. “어떤 이들은 몰라도 되는 병의 세계. 왜 그런 얘기를 꺼내냐고 반문하는 세계의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네가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을 잇기 위해 뛰어드는 이들을 생각한다.”(29쪽)

리단이 정신병 나라의 언어를 빚어왔을 치열한 시간을 가늠한다. 그의 주위에서 함께 고통을 나눴을 이들을 떠올린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조정하려고 애썼는지,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그도 아니면 절망했거나 고통받았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독해가 현실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9쪽)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언어를 쌓아간 몸부림이 담긴, 정신병의 나라로 초대하는 이 티켓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다.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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