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이 낳는 순간 걸린 ‘덫’, 그리고 자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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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에 펴낸 〈제2의 성〉에서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했다.
수많은 가능성의 별을 품고 반짝이던 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돌봄과 모성'이라는 '덫'에 걸리고 만다.
엄마이지만 '나'를 잃고 싶지 않은 여성들에게 이 책은 '창조적 모성'이라는 영감은 물론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는 해방감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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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상실 위기 겪은 20세기 여성작가들
‘모성적 주체성’으로 독창적 작품 빚어내
줄리 필립스의 ‘창조적 모성’ 통찰 빛나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줄리 필립스 지음, 박재연·박선영 ·김유경 ·김희진 옮김 l 돌고래 l 3만3000원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에 펴낸 〈제2의 성〉에서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했다. 수많은 가능성의 별을 품고 반짝이던 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돌봄과 모성’이라는 ‘덫’에 걸리고 만다. 구조적인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엄마들은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그 여성이 자신만의 글이나 시,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예술가라면, 그는 절대적인 ‘시간 빈곤’ 속에서 ‘자기 자신’(self)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에서 조명한 20세기 여성 작가들은 그 위험천만한 ‘모성 지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미국의 여성 초상화가 앨리스 닐부터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 미국 판타지 작가 어슐러 르 귄, 미국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수전 손태그 등이 바로 그들이다. 비평가이면서 전기 작가인 저자 줄리 필립스는 1960년대 이후 확산된 페미니즘이라는 자양분 속에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창조한 여성 작가들에 주목했는데, 그들의 ‘모성’(또는 엄마)과 ‘창조성’(또는 작가)이 만나는 지점에서 ‘창조적 모성’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추출해냈다. 여기서 말하는 모성은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해 잡초처럼 뽑아버려야 할 투쟁의 대상으로서의 모성도 아니고, 강하고 공격적이라는 남성성과 대비되는 부드럽고 관계지향적인 모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모성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하고자 했던 주인공”이었던 여성들이 “자기발견의 여정”에서 만난 모성이다.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엄마였던 예술가들에겐 ‘사랑스런 방해자’인 아이들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은 산만했고 즉흥적이었으며 자주 단절됐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시나 소설을 썼고 그림을 그렸다. 여성 창작자들은 임신·출산·육아라는 과정에서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예컨대 초상화가 앨리스 닐은 딸을 낳고 시부모로부터 그림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는가 하면, 그림을 그리려고 아이들을 비상계단에 방치했다는 모함도 들어야 했다. 누가 일할지, 아이는 어떻게 돌볼지 등을 두고 남편과 말다툼을 벌였고, 두 딸을 잃은 뒤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저자는 앨리스를 ‘모성의 무법자’라 부르면서도 그의 임신·출산·양육의 경험 때문에 만년에 빛나는 작품을 그렸다고도 평가한다.
책에는 앨리스처럼 처절한 경험을 한 작가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가족이 지루할 거라는 편견’의 장에선 판타지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삶을 다루는데, 어슐러는 “자신을 완전하게 해주는 재능과 관심을 가진” 찰스라는 남자를 만나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다. 어슐러는 육아를 “온몸으로 생각하는 일”이라고 불렀고, 아이를 키우는 순간을 즐겼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어슐러는 작업과 육아를 분리하고 ‘자신만의 방’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했다.
작가는 이처럼 개별 작가들의 삶을 ‘모성’이라는 축을 토대로 촘촘하게 들여다보되, 어떠한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성을 그린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삶에서 길어낸 저자의 독창적인 해석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엄마이지만 ‘나’를 잃고 싶지 않은 여성들에게 이 책은 ‘창조적 모성’이라는 영감은 물론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는 해방감을 선물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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