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보고 있나… 美, 모디에 처칠급 예우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3. 6. 2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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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만찬, 의회 합동연설도
유엔본부 앞 135國 ‘요가의 날’ 행사 -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백발 남성) 인도 총리가 21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 잔디밭에서 열린 ‘세계 요가의 날’ 기념 행사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요가 동작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 등 135국 출신 1000여 명이 참석해 ‘가장 많은 국적자가 모인 요가 수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코브라 자세를 비롯해 다양한 요가 동작을 선보인 모디 총리는 “요가는 모두를 하나 되게 한다”고 했다. 앞서 2014년 그는 유엔이 ‘세계 요가의 날’을 제정하도록 주도했다. /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우주 공동 탐사를 비롯해 첨단 기술과 안보 공조 등 전방위 분야에서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2014년 총리에 취임한 모디의 국빈 방미(訪美)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나라가 전례 없이 밀착하는 모습에 미 언론들은 “(바이든이) 서방과 중·러 사이에서 ‘독자 노선’을 견지해 온 인도를 확실히 (미국 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대놓고 ‘구애(court)’한 것”이라고 했다.

모디는 한때 미국이 외면하던 ‘기피 인물’이었다. 힌두교 민족주의자인 그는 인도 구자라트 주총리 시절인 2002년 힌두·이슬람교도 간 유혈 충돌에서 이슬람교도에 대한 폭력을 방관했다. 당시 1000여 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이슬람교도였다. 이를 이유로 2005년 모디의 입국을 거부했던 미국이 이번에는 180도 바뀌었다.

바이든이 만찬과 별도로 비공개 만찬까지 이틀 연속으로 저녁 시간을 낼 정도로 모디의 ‘몸값’이 올랐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모디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도 마련됐다. 이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 의회 합동 연설을 두 차례 이상 한 외국 정상은 손에 꼽힌다”며 “모디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같은 예우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모디 환대 배경은 미·인도 양국에 위협이 되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인도의 역할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인도는 서방 진영의 경제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원유·무기 수입을 대폭 늘렸다. 중국 견제 성격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에 참여하면서도 중국과 척을 지지 않고, 미국으로도 기울지 않는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그랬던 인도가 이번에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은 급성장하는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은 “서방과 중국 간 갈등이 심화되자 반도체와 전기차 등 첨단 분야 육성을 원하는 인도가 전 세계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도 미·인도가 밀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21일 전화 브리핑에서 ‘최근 몇 년간 미국·인도의 관계가 가까워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부상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미·인도)가 인도·태평양의 도전(중국의 위협)에서 직면하고 있는 전략적 환경이 인도를 움직였다”고 했다.

미국은 모디의 방문에 맞춰 ‘선물 보따리’를 잇따라 발표했다. 방미 첫날인 지난 20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모디를 만난 뒤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인도 정부는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27억달러(약 3조5000억원) 규모 반도체 패키징 공장 설립을 승인했다.

또 백악관은 인도를 포함한 외국 출신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의 ‘미국 내 연장’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현행 H-1B 비자는 한 번 연장을 거쳐 최대 6년까지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대신, 본국으로 일시 귀국해 연장 절차를 밟아야 했다. 작년 기준으로 H-1B 비자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의 73%가 인도 국적자인만큼, 이번 완화 조치의 최대 수혜국은 인도다. 이코노미스트가 “미국의 새로운 ‘베스트 프렌드’가 된 인도”라고 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눈에 띄게 가까워진 것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모디 환대가 인도의 인권 탄압과 언론 자유 제한 등을 눈감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민주당 내부에서 상·하원 의원 70명이 바이든에게 “인도의 정치·종교 자유의 후퇴 등 우려 사항을 정상회담에서 다뤄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내며 반발했다. ‘인권’을 강조해 왔던 바이든이 모디의 야당 정치인 탄압, 언론 통제 강화, 소수 민족 차별 등을 모른 척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모디를 환대하는 과정에서 바이든은 민주주의 문제를 축소했다”며 “독재와의 싸움을 자신의 결정적 투쟁으로 선언한 바이든이 (모디처럼) 불완전한 몇몇 친구들을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닷새 일정으로 미국을 국빈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뉴욕 시내 호텔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오른쪽)가 21일(현지 시각) '세계 요가의 날'을 기념해 뉴욕 유엔본부 잔디밭에서 열린 집단 요가 행사에서 배우 리처드 기어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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