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 눈총에 몸 낮춘 학원들 “킬러 문항 일단 빼지만…”
정부 단속 첫날, “학생 수요 많은데…무시하면 불이익” 곤혹
유명 강사 타깃 분석도…일부 수험생 ‘지침 반대’ 국민청원
“일단 소위 ‘킬러 문항’들은 문제집에서 다 빼고 있어요. 그런데 아주 없애면 또 상위권에 변별력을 줄 방법이 없어지잖아요. 한 문제로 당락이 갈리는 수강생들 입장을 고려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에요.”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15년간 학원을 운영해온 원장 A씨는 22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부가 말하는 ‘이권 카르텔’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있더라도 초대형 학원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텐데 일반 중소학원에도 영향이 미칠까 걱정된다”면서 “(학원가에서는) 정부의 단속 대책 등에 불만도 상당히 있지만 일단은 좀 조심하고 말을 아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킬러 문항’ 대비도 실제 수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지금 당장 어떤 방향을 정하기보다 9월 모의평가를 보고 판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날부터 2주간 사교육 이권 카르텔, 허위·과장 광고 등 학원 부조리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학원가에서는 “수요를 생각하면 킬러 문항을 안 가르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단속 방침을 무시하다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대치동 영어학원 강사는 “일단 킬러 문항 비중을 줄이고 EBS 연계 문항 비중을 높일 계획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수요가 있다 보니 킬러 문항을 아예 없앨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은 결국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강사들을 잡겠다는 것 같다”며 “이미 학원가에서는 국세청이 주요 학원강사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갈 거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고 했다.
26년차 국어학원 강사 B씨는 “제도가 바뀌니 학원도 그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단속의) 정확한 기준을 모르겠다. ‘최고’ ‘전국 1위’처럼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용어도 과장이라면 과장인데 이런 것까지 포함해 단속하면 사실상 다 걸릴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했다. 정부의 단속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 학원법 등에 따르면 과대·거짓 광고를 한 학원에 대해서는 교습 정지, 등록 말소 등 처분이 가능하다.
학원 원장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는 “제가 잘 몰라 그러는데 사교육 카르텔이 뭐냐”면서 “(정부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공부 방향을 바꿔야 하는 수험생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대치동에서 만난 재수생 이모씨(20)는 “지금까지 학원에서 킬러 문항 대비 훈련을 해왔다. 과학탐구 과목도 킬러 문항을 고려해서 선택했는데 갑자기 문제 출제 방향을 바꾼다고 하니 당황스럽다”며 “여름방학이 학습전략이나 탐구과목을 바꿀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부 수험생들은 정부 지침에 반대의견을 국민청원에 올리기도 했다. 전날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정부의 개입 반대에 관한 청원’은 하루 만에 3180명(22일 오후 4시 기준)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글에서 “정부의 (수능) 개입은 부당한 것으로 수능이 5개월 남은 시점에서 수험생의 혼란을 가중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행 목적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세훈·김송이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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