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향하는 중동…석유 패권 약해진 젊은 군주들의 ‘왕정 사수’ 프로젝트?[사이월드]

손우성 기자 2023. 6. 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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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2034년 소행성 연구 청사진
사우디, 최초 여성 우주인 선발
후발주자 카타르·오만도 도전장
“석유가 풍부하게 흐르지 않는 미래에 대비”
절대 왕정 지키기 위한 힘겨운 전략 해석도
얼마 전에도 비슷한 뉴스를 봤던 것 같은데 무슨 맥락에서 나온 건지 궁금할 때 있으시죠? ‘사이월드’가 단편적인 여러 국제 뉴스의 사이사이를 짚어 세계의 흐름을 보여드립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국내외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은 기사 하나가 뉴욕타임스(NYT)에 실렸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2028년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유스티티아(Justitia)에 우주선을 발사해 2034년까지 물의 존재 등 소행성 구성 요소를 밝혀내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소행성 탐사는 태양계 형성 역사는 물론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계의 핫이슈로 꼽힌다. 특히 최대 2만 마일(약 3만2186㎞)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접근시켜 정확하게 탐색 도구를 떨궈야 하는 탓에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UAE 우주국은 “소행성 탐사는 우리 우주 산업 전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UAE는 소행성 연구에 활용될 우주선을 UAE 총리이자 두바이 아미르(군주)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영문 이름 앞글자를 딴 ‘MBR 익스플로러’라고 명명했다. 그만큼 UAE 정부가 소행성 프로젝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있는 무함마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MBRSC)에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접시 안테나 앞으로 UAE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주를 향한 중동의 비상이 심상치 않다. UAE를 필두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오만 등 중동 주요국은 경쟁적으로 우주 산업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국제 컨설팅 시장정보 업체인 유로컨설트가 최근 발표한 ‘정부 우주 프로그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우디가 우주 관련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2억5000만달러(3196억2500만원)였다. UAE는 1억9800만달러(2531억4300만원), 카타르는 2700만달러(345억3300만원), 오만은 2400만달러(306억9600만원)를 각각 투자했다.

물론 미국(620억달러)과 중국(120억달러) 등 기존 우주 산업 강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지만, 중동이 우주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UAE는 중동 우주 산업 발전의 선두주자다. 2021년 2월 화성탐사선 ‘아말’의 화성 궤도 진입 성공으로 UAE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 인도에 이어 화성 궤도에 진입한 세계 다섯 번째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UAE 당국은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에 ‘불가능은 가능하다(Impossible is possible)’라는 문구를 LED 조명으로 새겨 넣으며 자축했다. 특히 UAE 건국 50주년에 이룬 쾌거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사라 알아미리 UAE 우주청장은 “신생 국가라는 한계에서도 인류가 화성을 연구하는 데 실질적인 이바지를 하게 됐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4월 ‘아말’은 화성의 두 위성(달) 가운데 하나인 ‘데이모스’를 고화질로 촬영해 지구로 전송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데이모스의 뒷면 관측에 성공하면서 화성 위성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알아미리 청장 말대로 UAE는 1971년이 돼서야 연방 정부를 구성한 젊은 국가다. NYT는 “미국 메인주보다 약간 작은 산유국인 UAE는 우주 비행을 처음 접하는 국가”라며 “20년 전엔 우주 프로그램 자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6년 소형 지구관측 위성인 ‘두바이샛’ 개발을 시작으로 우주 산업 토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 등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대학엔 우주 과학 기술 관련 전공을 대거 신설했다.

무엇보다 나이와 성별 등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양성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아말’을 개발하는 데 참여한 연구자의 34%가 여성이었는데, 이는 UAE가 아랍권 국가임을 고려하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결과 2021년 4월 UAE는 아랍권 최초로 여성 우주인을 탄생시켰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MBRSC)가 진행한 우주인 프로그램엔 4305명이 지원했고, UAE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국영 석유건설공사(NPCC)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27세 여성 노라 알마트루시가 최종 2인에 이름을 올렸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도 UAE 독주에 도전장을 던졌다. 사우디는 2018년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칙령으로 사우디우주위원회(SSC)를 설립하고,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1985년 아랍계 최초 우주인 기록을 세운 술탄 빈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자에게 지휘를 맡긴다. 이후 2021년 3월 소형 지구관측 위성 ‘샤헨샛 17’과 기술교육용 위성 ‘큐브샛’을 쏘아 올리며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했다.

지난달 22일엔 사우디 첫 여성 우주인 레이야나 바르나위를 태운 미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 민간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하자 사우디 당국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바르나위는 뉴질랜드에서 생체의학을 공부한 뒤 사우디에서 10년 가까이 암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다. 우주 분야와 상관없는 길을 걸었지만, 사우디 당국의 여성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에 합격했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는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고향에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사우디인의 희망과 꿈을 대표하고 있다”고 감격을 표했다.

이 외에 오만은 지난 1월 항구도시 두쿰에 중동 최초 우주 로켓 발사 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주 분야 전문 매체인 스페이스워치글로벌은 “오만 두쿰은 적도 가까이 위치해 효율적인 로켓 발사가 가능하다”며 “시설 완공까진 최대 3년이 걸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오만에 로켓 발사 센터가 생기면 중동 전체 우주 프로그램은 훨씬 강화될 것”이라며 “이 센터가 중동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치켜세웠다.

카타르도 미 항공우주국(NASA)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카타르 도하뉴스에 따르면 카타르 당국은 지난 2월 성명을 통해 “NASA와 기후 연구를 위한 전문 과학 위성을 설계하고 발사하자는 공동 협력 프로젝트에 서명했다”며 위성은 2025년에 발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EPA연합뉴스

그렇다면 중동이 이토록 우주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중동에 부는 산업 구조 재편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NYT는 UAE의 소행성 탐사 소식을 전하며 “석유가 더는 풍부하게 흐르지 않는 미래에 대비해 우주 산업을 키우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낼 원유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중동의 ‘석유 패권’이 예전만 못하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사우디는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정례 장관급 회의에서 일괄적인 원유 추가 감산을 주장했지만,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사우디만 다음 달부터 하루 10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줄이는 이른바 ‘나 홀로 감산’을 선언했는데 국제유가는 사우디가 원했던 만큼 오르지 않았다.

영국 BBC는 “우주선 발사 시도의 절반은 실패로 끝난다. 리스크가 아주 큰 분야”라면서도 “그래도 중동은 석유 의존 경제에서 탈피해 미래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여긴다”고 전했다.

강력한 절대 왕정 리더십을 지키기 위한 ‘젊은 군주’들의 힘겨운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은 1985년생으로 아직 30대에 불과하다. ‘오일 머니’만으로 권력을 유지했던 선왕들과는 다른 환경에 처해있다. 특히 인구의 70%가 30세 미만인 사우디를 이끌어 가기 위해선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빈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2016년 4월 석유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부분 경제 기여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한 그는 ‘진취적인 국가’를 주요 키워드로 꼽고 우주 개척을 강조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4월 사우디 첫 여성 우주인 바르나위를 격려하며 “사우디 왕국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주요 기둥은 바로 우주”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카타르를 통치하는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도 1980년생으로 40대 초반이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은 1961년생이지만, 지난해 5월 대통령 자리에 올라 중동에선 비교적 새로운 인물로 꼽힌다. 그는 지난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UAE는 우주 분야에서 계속해서 의미 있는 전진을 이뤄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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