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행정·뒤틀린 정치가 빚은 이란 물 부족 사태
농업 중심 경제 시스템·지역 차별이 원인
NYT “정치가 물관리를 방해해왔다”
이란이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말라붙은 강줄기에 일부 지역에선 약 20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원래 전 세계에서 강수량이 적기로 유명한 이란이지만, 올해 물 부족은 정부의 무능한 행정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앞으로 3개월 이내에 시스탄과 발루치스탄 지역 물이 모두 마를 가능성이 있다”며 “이곳에 거주하는 200만명이 고향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수도 테헤란에서도 순환 단수가 시행되고 있다. NYT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가축에게 물을 주는 건 고사하고 빨래나 목욕할 물조차 구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이란은 1년 중 7개월 이상 비가 내리지 않고, 연평균 강수량이 300㎜ 안팎에 그치는 국가다. 7~8월 한여름엔 기온이 50도 이상 치솟는다.
하지만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의 가뭄 피해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악화했고, 특히 올해 강수량은 예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란 영문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270개 도시가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선 ‘하늘 탓’만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NYT는 “가뭄은 수 세기 동안 이란을 괴롭혔지만, 최근 몇 년간은 정치가 물관리를 방해해왔다”며 정부의 무능을 꼬집었다.
우선 이란 정부가 건조한 기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농업 위주의 경제 시스템을 고집한 탓에 물 부족 현상이 심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이란은 귀중한 물을 농지에 계속 쏟아붓고 있다”며 “이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각종 제재가 가해지자 이란 정부는 농업 규모를 두 배로 늘려 필요한 모든 식량을 수입 대신 자급자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메마른 이란의 지하수 고갈을 부추겼고, 농민들이 불법 우물을 팔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중남부 페르세폴리스에서 지난해부터 감지되는 땅 꺼짐 현상도 무분별한 우물 개발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이란 정부가 반정부 정서가 강한 대도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막대한 보조금을 농촌에 뿌렸고, 이를 바탕으로 농민들은 경작지를 무리하게 넓혀 물 부족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정부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물을 대기 위해 댐과 보 건설로 물길을 바꿨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NYT는 가장 큰 가뭄 피해를 본 시스탄과 발루치스탄엔 소수 민족이 모여 살고 있고, 이들이 평소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두 지역은 지난해 히잡 미착용 여성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비교적 길게 이어진 곳이었는데, 정부 물 정책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문제는 이란 정부가 책임을 아프가니스탄 등 외부에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은 아프간 탈레반이 이란으로 향하는 헬만드강을 막아 농업용수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엔 수자원 문제를 두고 이란 국경수비대와 탈레반이 충돌해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탈레반에 “헬만드강에 대한 이란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프간은 “단순히 헬만드강 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버티고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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