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의사 장기기증 30년, 새 생명 부활의 숭고한 여정

이순용 2023. 6. 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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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뇌사판정 故 음태인 인턴(당시 25세), 간 등 5명에 새 삶 선물, 생명 나눔 뜻 기려
첫 의사 간이식 수혜자 이종영씨, 간이식과 비뇨기암 이겨 낸 병원 최고령(88세) 환자 투병 경험 나눠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병원의료의 꽂이라 불리는 장기이식. 장기가 질병으로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다른 사람의 새 장기를 이식하여 기능을 되살리는 의학이다.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기술인 반면 수술 전 준비부터 수술 기술, 수술 후 거부 반응 관리까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으로 장기이식의 성공 역사는 길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신장이식은 1954년, 간이식은 1963년이 첫 성공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 3월 23일 서울성모병원의 전신인 당시 명동 소재 성모병원이 신장이식 수술을 처음 성공하며 국내 장기이식분야에 이정표를 세웠다. 하지만 수많은 혈관을 연결해야 하는 간이식은 고난이도 수술로 국내 극히 일부 병원에서만 이뤄졌고 성공사례도 많지 않았다. 30년 전 아직 우리니라의 의료기술의 발전이 더디고 미흡한 시기인 1993년 6월, 한 젊은 의사의 거룩한 생명 나눔이 장기이식의 빛을 밝히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간이식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1993년 3월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를 본받아 가톨릭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재직하던 음태인(당시 25세)의사는 같은 해 6월 22일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지게 되었다.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불었고, 스키를 잘 탔으며, 친구가 많은 멋진 청년이었다. 뇌사로 커다란 충격에 빠진 가족과 아버지 음두은 박사는 고민 끝에 아들과 본인의 모교인 가톨릭의대로 옮겨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음 박사의 대학 동기이자 고인의 스승인 김인철 명예교수(전 서울성모병원장)와 김동구 교수(은평성모병원) 집도아래 열 시간 넘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고인과 함께 공부한 동기들과 전공의들은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수술대에 누워있는 모습에 오열하며, 스승 뒤에 서서 수술을 참관했다. 고인과 유가족의 숭고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끝에 수술은 성공을 거두어 새로운 생명을 살렸다.

이는 간이식을 위한 준비과정의 일환으로 의료진을 이식수술이 발달한 해외에 파견하고 선진 이식술 연수를 받도록 한 것은 물론 이식수술에 필요한 고가의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등 병원이 사전준비를 철저히 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기존의 망가진 간을 절제하고 이식받을 간을 그 자리에 심어 혈관 및 담관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진행과정이 복잡하고 출혈도 많을 수 있는 매우 고난도 수술을 국내에서도 성공 시키겠다는 의료진들의 집념어린 의지가 결실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30년이 지난 2023년 6월 22일. 숭고한 나눔정신으로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첫 간이식 성공한 날을 기억하는 자리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렸다.

국내 첫 번째 젊은 의사의 생명나눔으로 건강하게 생활하며 올해 환갑을 맞은 이종영(60세, 남) 씨는 “1993년 6월 22일 간이식 처음 받고 올해로 30주년 되었다. 93년 5월 무렵에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얼마 못사니까 집에서 편히 있으라고 보호자한테 얘기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집에 있는 동안 병원에서 간 이식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는데, 당시 고통이 심했고 복수가 많이 차있던 상황이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해보고 죽자는 마음으로 간이식을 받았다. 하루 금식하고 수술방에 들어가니까, 김인철 교수님이 다리를 만져주면서, 잘 될테니까 걱정말고 수술 잘 받고 나오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투병생활을 회상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 씨는 30세 때 간경화 말기를 진단 받고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마지막 병원 입원 때는 앞으로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건강을 위해 경기도에 내려가 지내던 중 병원에서 급히 간을 기증받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렵고 큰 수술이라 두려웠지만 의료진을 믿고 전화 받은 순간부터 금식하며 병원에 입원한 바로 다음날 수술대에 올랐다.

이 씨는 “수술을 잘 받고 나와서 회복기간에 죽을 고비 몇 번 넘기면서 의사 선생님 속을 많이 썩였는데, 약 때문에 힘들어서 중환자실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당시 상황이 기억은 안나는 데 나중에 보호자에게 얘기를 들었다. 어느정도 좋아진 다음 병실에 올라온 지 3~4일 지났을 때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는데 해가 비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게 새 생명을 갖고 건강한 모습으로 사는 모습이구나 느꼈다. 김인철 전 병원장님과 김동구 교수님, 윤승규 병원장님, 최종영 교수님을 비롯해 전찬구 동인회 회장님과 임원들에게 항상 고맙고 감사드린다.”라며 기증자와 의료진에 감사를 전했다.

병원 첫 간이식을 집도한 가톨릭의대 김인철 명예교수가“1969년 국내 최초로 고 이용각 교수님을 주축으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뒤 다음 장기로 간을 목표로 많은 의료진들이 노력했다. 간 이식을 준비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동물실험을 하며 간이식 기술을 충분히 습득한 뒤 캠브리지, 피츠버그 등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고, 당시 우리나라에 뇌사에 대한 정의가 없어 캠브리지, 하버드 기준을 자문으로 해서 뇌사의 정의에 대해 정리하는 등 준비를 많이 했다”고 병원 첫 간이식을 준비하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아과를 전공한 동기의 아들이기도 한 고 음태인 씨는 의사된 지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가 되면서 첫 간이식을 하게 됐는데, 간이식은 외과 혼자만 하는 게 아니고 내과, 마취과 등 여러 과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간이식을 했다. 정년퇴직한 지 오래되어, 간이식을 받은 이종영 씨 상태가 어떤지 김동구 교수에게 물었더니 아주 건강히 잘 생존해 계신다고 들어 정말 감동스럽고 보람을 크게 느꼈다. 한 생명을 우리가 노력해 살게 했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주치의 소화기내과 최종영 교수도 회고사를 통해 “한 명의 이식환자가 수술해서 퇴원하기까지 100명 정도의 의료진이 참여하는데, 즉 100명의 손길이 가야 퇴원하게 된다. 보통 간이식은 외과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병원은 간이식을 내과와 외과가 같이 하고 있다. 처음부터 같이, 끝나고도 같이 하는 국내 유일한 병원이다. CMC 내외과 간이식 세미나를 통해 매년 모여서 증례토의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전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성모병원 최고령 간이식 환자인 이기만(88세, 1934년생, 남) 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90세, 만 나이로 88세, 팔팔하게 살고 있는 간이식 25년차”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의료진께 감사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당시 수술받을 때 저를 살려주시면 성당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주님께 약속했다. 25년 동안 매일미사, 장례미사, 복사 활동을 해왔고, 금년부터 복사 활동은 못하지만 장례미사 때 연도, 입관예절 등은 아직 하고 있고 성당의 할아버지 단체인 요아킴 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아직 살게 해주신 주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가 제 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새 삶을 살게 해 준 서울성모병원 의료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1998년 10월 28일 환자가 64세 때 뇌사자로부터 간을 이식 받고 현재까지 건강을 되찾아 생활중으로, 최근 방광암과 전립선암도 이겨내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투병 경험을 나누었다.

첫 간이식 당시 소화기내과 임상강사로 환자를 돌본 서울성모병원장 윤승규 교수는 축사를 통해 “저희 병원의 간이식 역사는 외과 김인철 명예교수님, 내과 김부성 명예교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 선도했던 병원이었기에 간이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선배님들의 난치 질환에 대한 헌신적이고 과학적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자리 없었을 것이며, 선배님들의 정신을 잘 이어받아 장기이식 정신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 지난 30년 동안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의 많은 업적을 토대로 앞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며 글로벌 병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밝혔다.

장기이식센터 주최로 6월 22일 오전 10시 30분 병원 지하1층 대강당에서 개최된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은 영성부원장 이요섭 신부의 시작기도를 시작으로 간담췌외과 유영경 교수의 개회사,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김평만 신부의 축사가 있었다. 또한 간담췌외과 최호중 교수의 ‘CMC 간이식 30년 보고’로 간이식 의료의 발전 내용을 소개하였고, 은평성모병원 간담췌외과 김동구 교수가‘CMC 간이식 발전과 비전’을 주제로 간이식의 발전방향을 제시하였다.

한편, 병원의 간이식팀은 치료가 까다로운 진행성 간암환자를 포함한 간암 환자의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화기내과, 간담췌외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 등 여러 임상과 전문의가 참여한다. 그 결과 1993년 6월 첫 뇌사 간이식 성공 이후, 1996년 5월 첫 생체 간이식, 2001년 3월 간·신장 동시 이식, 2001년 8월 소아 간이식을 성공했다.

2002년 4월 9일은 세계 최초로 골수이식 후 간이식에 성공했는데, 이는 이식 전 장기이식 수혜자와 공여자의 면역체계를 같게 만든 후 간이식을 시행하여 거부반응 없이 면역억제제를 중단할 수 있는 선구적인 이식 성과다. 이후 2007년 7월 비혈연관계 간 교환이식, 2008년 8월 병원 간 교환이식, 2010년 1월 생체 간 재이식, 2010년 10월 혈액형 불일치 간이식에 성공하며, 수술 가능한 환자 범위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또한 간이식팀은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8개 병원을 연계한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 뇌사자 간이식은 물론 생체간이식에도 필요 시 전문 외과인력이 산하 병원 수술에 참여하고 있다. 그 결과 2002년 간이식 100례, 2017년 4월 간이식 1000례에 이어 2022년 간이식 1300례를 돌파하였다.

장기이식 환자를 위한 중환자실, 수술실, 병동, 외래공간을 별도로 갖춰 수술 안전성과 치료 수준을 높이고 있다. 특히 1969년 국내 최초 신장이식을 성공한 이후 대한이식학회 창립을 주도해 장기이식 분야를 선도하며 발전의 기틀을 다졌던 병원은, 현재까지 축적된 이식 후 면역치료의 노하우를 간이식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수술 후 새로운 간을 잘 관리하기 위해 이식 후 면역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연구도 지속하여 간이식 환자의 면역상태에 영향을 주는 장내균총을 처음 규명하기도 하였다. 특히 환자 뿐 아닌 간 기증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생체 간이식 수술 시 기증자의 간을 복강경과 최소 절개 수술로 절제해 회복시간을 단축시키고 흉터를 최소화해 수술 후 불편감도 줄이고 있다.

또한 간이식 후 생명을 되찾은 이들이 삶을 나누기 위한 간 이식인들의 자원봉사 모임 ‘동인회’가 2001년 6월 결성 이후 간 건강의 악화로 낙담하고 불안해하는 환자들을 위로하며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동인회원들이 직접 연주에 참여하는 숭고한 생명나눔을 실천한 ‘故 음태인 의사 추모 음악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전찬구 간이식 동인회장은 “간질환으로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간이식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새로운 생명을 선사받았기에 남은 인생 더욱 열심히 살고 싶고, 서울성모병원 의료진들과 간을 기증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22일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 3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과 간이식 의료진, 간이식 환자 등이 병원장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간담췌외과 유영경 교수, 소화기내과 최종영 교수, 은평성모병원 김동구 교수,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 본원 최초 간이식 환자 이종영 씨, 가톨릭의대 김인철 명예교수, 전찬구 서울성모병원 간이식동인회 회장, 본원 최고령 간이식 환자 이기만 씨).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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