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의 들춰보기-봉태규와 우리들의 아빠[문화칼럼]

오창석 작가 2023. 6. 2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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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인 내게, ‘부모님께 혼이 났다’는 말은 곧 ‘맞았다’와 동일한 말이었다. 다시 말해, 나의 유년 시절에는 혼날 일을 저질렀을 때 맞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북 의성 출신에 줄곧 부산에서 사회생활을 하셨던 나의 부친은 거칠 것이 없이 거칠었다. 화가 나면 일단 언성을 높이셨고 심지어 모친과의 말다툼에서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나와 우리 동생에게 화풀이하기도 했다. 그런 엄한 부친 밑에서 자란 나로서는 일탈은 꿈도 꾸기 어려웠고 어른들이 말하는 ‘나쁜 짓’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만 아이가 성장할까?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하는 나의 나쁜 짓이 있다.

아버지는 늘 아침 7시에 출근 준비를 마치셨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새벽 6시부터 출근 준비를 했고 그 소리에 나는 잠깐 잠이 깼다. 불현듯, 어제 아버지의 지갑에 만원짜리가 많았던 것이 기억났다. 어머니는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와 재첩국을 판매하던 아주머니께로 가셨고 아버지는 욕실에 계셨다. 동생은 잠이 들어 있었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아버지 정장 안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만원짜리 한 장을 빼들었다. 중요한 건 만원을 빼내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 뒤에 만원으로 무엇을 할지, 만원을 어디에다 숨겨둘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 때 생각한 건 옷걸이 옆에 있는 TV 문갑이었다. 나는 문갑의 서랍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TV 뒤편으로 만원짜리를 던져 놓았고 곧바로 다시 잠을 자는 척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있으면서도 혹시 아버지가 만원짜리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를 의심하면 어떻게 할까, 근데 내 몸엔 만원짜리가 없으니 내가 훔치지 않았다고 하면 완전범죄가 되지 않을까, 나는 진짜 몰랐다고 딱 잡아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든 척했다.

성공했다. 어머니는 재첩국을 사와 아침을 차리셨고 아버지는 그대로 출근하셨다. 그날 나는 하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TV 뒤편의 만원짜리를 꺼내 친구들과 문방구를 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크지 않지만 그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야구선수 카드와 고작 100-200원 하던 아이스크림을 마치 부자라도 된 듯 친구들에게 막 쏘고(?) 다녔다. 만원을 혼자서 쓰면 오래갔겠지만 친구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살았더니 그리 오래 쓸 수 없었다. 나는 또 똑같은 일을 감행했고 또 한번 성공했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가족끼리 밥먹는데, ‘돈이 없어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도 나는 어차피 내가 훔친 것이 아니라 TV 문갑 뒤편에 떨어져 있는 돈이라 생각하며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물증이 없어도 범인은 특정될 수 있다. 여느 때처럼 어머니는 재첩국을 사러 나가셨고 아버지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가셨다. 매번 성공했던 그 패턴대로 나는 만원을 TV 문갑 뒤편으로 던져두고 잠을 청했다. 몇 번의 성공 덕분에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보통은 주방에서 흰 봉지에 묶인 재첩국을 곧바로 냄비로 붓고 아침 식탁을 차리기 분주하실 텐데 오늘은 곧바로 큰방으로 들어오신다. 아버지 정장 안쪽을 확인하신다. 지갑을 꺼내보신다. 돈을 확인하신다. 그리고 날 깨우면서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네가 그랬구나.’

나는 잠이 덜 깬 척하며 시치미를 뚝 뗐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버지는 식탁에 앉으셨고 어머니는 ‘오늘 저녁 반찬거리 살거 있어서 만원 꺼내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알겠다며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다른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마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세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한번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창석이는 나쁜 짓한 거, 엄마가 알고 있으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라. 아빠 알면 가만히 안 있으니까 오늘까지만 엄마가 만원 쓴 거다.’

몸은 마치 누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그 어떤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완벽히 들킨 상태라 부끄러워 제대로 ‘네’라는 답변도 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 때 부친에게 직접 걸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높은 확률로 그 어린 나이에 임플란트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친은 그 정도로 터프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지만, 아버지처럼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때리고 언성을 높이는 교육 방식을 매우 싫어하셨다. 결정적으로 ‘말’의 힘을 믿으셨다. 단언컨대, 그 뒤로 나는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 때 맞았어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말’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봉태규가 집필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교보문고 제공



최근 배우 봉태규의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1981년생인 저자는 나와 고작 5살차이니, 부모님의 상태(?)는 비슷했을 것이다. 일면식은 없지만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장배경을 가졌을 것이라 짐작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절 너무나도 보편적이었던 아버지의 엄한 모습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고, 기어코 봉태규 배우가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댄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내용도 나와 거의 똑같았다. 아버지 양복 속에 손을 넣어 돈을 찾았고, 몰래몰래 빼쓰는 재미에 취해갔다. 프라모델도 구입하고 날로 대담해졌다. 다만, 여기서부터 내용이 달라진다. 모친에게 걸릴 때까지 멈추지 못했던 나와는 달리, 봉태규 배우는 그 행동을 멈추었다. 언젠가부터 양복 속의 돈이 만원짜리가 아닌 천원짜리로 두툼하게 말려있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아들이 돈을 빼갔다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그걸 이제 와서 ‘제가 그동안 돈 빼서 쓰신 거 알고 계셨나요?’라고 물어보기도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진실은 명확하지 않더라도 힌트를 주고 떠나는 경우가 있다. 봉태규 배우의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유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양복 속에 돈뭉치를 발견했는데 그걸 보시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태규가 나중에 용돈이라도 필요하면 쉽게 꺼내주기 편하게 그곳에 둔거라고’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다. 아들이 돈을 빼서 쓰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던 거다. 그 문장을 읽는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울컥거리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봉태규 배우는 이 대목에서 벌이가 시원찮았던 아버지가 만원씩 사라지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워 천원짜리 뭉치로 바꾸어서 아이를 나무라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임을 감출 수 있는 선이라고 표현했다.

순간 나의 부친과 봉태규 배우의 부친이 동시에 짠해졌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제대로 사랑을 배울 수나 있었을까? 나의 부친만 하더라도 1956년생이다.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이 1953년에 휴전 협정을 체결했으니 사실상 전쟁 세대다. 살아남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을 부친의 세대에게는 어쩌면 사랑을 받는 것도,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사치였을 것이다. 아니다, 보고 듣고 배운 적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 봉태규 배우는 부친에게 맞았던 사실까지도 여과 없이 써두었으니 매번 사랑이 넘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그쳤다면 아버지의 에피소드를 다룬 일반적인 책이었을 거다.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가 된 ‘아빠’ 봉태규의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빠’ 봉태규는 누구보다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오죽하면, 스스로도 스킨십과 애정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꽤나 능숙하고 적극적인 아빠라고 생각한다고 써두었을까. 하지만, 사랑은 내가 표현하는 방식대로 거두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운 것 같았다. 둘째 아이에게 애정 표현하기 위해 볼에 뽀뽀를 해주고 적극적으로 포옹을 해주었지만 어느 날은 아이가 ‘아빠, 나한테 물어봐야지!’라며 애정 표현을 할 때 허락을 구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엔 예삿일로 여겼고 시간이 지나 또 뽀뽀를 해주었을 땐, ‘아빠, 내가 나한테 물어보라고 했잖아! 아빠 이제 오지마!’라고 말했단다.

아뿔싸. 나도 솔직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빠가 되면 아이들에게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겠다는 그 생각 말이다. 자주 안아주고 스킨십을 아낌없이 해주는 것이 아빠라는 사람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깨어지는 것이다. 봉태규 배우는 자신의 행동이 아빠라는 호칭에서 나온 권위였을 수도 있다며 거절을 할 수 있는 아이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아빠로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표현했다.

아빠 돈을 훔쳤던 나, 하지만 그 속에서 마음껏 용돈을 주지 못해 조심스러웠던 아빠, 때로는 내게 화풀이를 해대던 아빠, 하지만 마음속엔 또 사랑을 숨기고 있던 아빠, 그런 아빠를 보며 난 사랑을 듬뿍줘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던 아빠, 하지만 다가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 아빠, 책을 읽고 앞으로 내가 어떤 아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봉태규 배우는 정말 괜찮은 아빠,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bonne vie!!”

▲오창석 ▲작가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정리: 이선명

<오창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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