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툰베리가 쓴 '기후책'

송광호 2023. 6. 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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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 있지만 우리가 모두 한배 탄 건 아니야"
북반구에 살아가는 선진국 책임 커…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어"
케냐 메뚜기 떼 비상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케냐의 농부 메리는 2020년 2월 드넓은 옥수수밭이 사막 메뚜기 떼에 뒤덮여 초토화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달 뒤에는 코로나19가 케냐를 덮쳤다. 비옥했던 토지는 엉망이 됐는데, 코로나로 복구할 물자를 얻을 수조차 없었다. 메리가 낙담하던 사이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메리가 키운 작물의 영양소가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자란 옥수수의 철, 아연, 단백질 함량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정상인 곳에서 자란 옥수수에 견줘 상당히 낮았다. 설상가상의 상황은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게 아니었다. 지구의 자연 시스템에 교란이 생겨 나타난 후과였다. 시스템을 엉망진창으로 망쳐놓은 장본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호모 사피엔스, 바로 인간이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파멸적인 존재였다. 사피엔스는 약 12만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나 각 대륙으로 이동했는데, 그때부터 대형 포유류의 대재앙이 시작됐다. 몸무게 90㎏에 이르는 비버, 나무늘보 '글립토돈', 대형 코뿔소, 몸집이 기린만 한 새 '모아' 등이 잇달아 멸종했다. 심지어 멸종종 안에는 같은 인간종인 네안데르탈인도 있었다. 사피엔스가 정착한 시점과 이들의 멸종 시점은 정확히 일치했다. 인간이 불운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대형 포유류에 이어 이제는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까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수많은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은 인간이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여섯번 째 대멸종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지성들과 함께 쓴 '기후책'(원제: THE CLIMATE BOOK)은 그런 심각한 상황을 일으키고 있는 인간의 활동과 상황을 조망한 책이다. 책에는 여러 통계와 과학에 기반한 '예언'이 함께 수록돼 있다.

아프리카에서 물을 길어가는 여인들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산업 혁명 후 자본주의가 강화하면서 인간은 지구 깊숙이 자리한 암석층에서 자원들을 끌어올려 산업 발전의 연료로 사용했다. 석탄과 석유 등 각종 부존자원을 통해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하에 봉인돼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흩어졌다. 지구가 수십억년 동안 애써 붙잡아놓은 탄소를 200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마구 풀어낸 셈이었다. 이산화탄소는 화산에서 분출돼 대기와 바다로 들어가고 생명의 순환에 개입했다가 다시 암석에 축적되는 이동을 통해 지구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탄소순환'은 지구 환경 형성의 핵심이다. 그런데 인간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 환경 시스템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케냐의 농부 메리가 겪고 있는 '삼중고'는 산업혁명 후 인간이 환경에 가한 결과였다.

지난 200년간 건물을 세우고, 철도를 놓고, 길을 닦으며 인간은 무수히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했다. 자동차부터 우리가 입고 있는 옷까지, 산업혁명 후 인류 문명은 탄소에 기반해 성장했다. 그 결과,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후 1도 넘게 상승했다. 여러 학자에 따르면 2도가 넘게 올라간다면 지구위험한계선을 넘어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티핑포인트'를 넘어서 대재앙이 빚어지는 아포칼립스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각국이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고 1.5도 안으로 억제하고자 노력하자고 의결한 이유였다.

수록 도표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책에는 녹아내리는 빙상과 경제학, 종의 손실, 감염병 팬데믹, 바다에 잠겨가는 섬, 삼림 훼손, 토양 황폐화, 물 부족, 미래 식량 생산, 탄소 예산까지 기후변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들이 담겨 있다. 여러 학자의 글을 묶어 글마다 통계가 다소 차이가 나지만 여러 통계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대재앙'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제 스무살을 맞은 툰베리는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인생은 그 어떤 일도 흑과 백으로 가를 수 없고, 딱 떨어지는 해답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학의 세계, 물질의 세계는 인간사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흑과 백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소비를 유지하려면 지구 4개 정도가 필요하고, 만약 이 좁은 공간에서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한다면 인류가 살아남기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주요국의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을 인구로 나눈 값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문제가 이처럼 심각하지만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툰베리의 말처럼 "폭풍 속에 있지만 우리가 모두 한배를 탄 건 아니"어서다. 일단 선진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그 허들을 넘는다 해도 후진국의 '타당한' 반발이 남아 있다. 후진국들은 '왜 우리가 줄여야 하나? 그건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선진국들이 주로 식민주의를 통해 탄소를 엄청나게 소비하며 발전했는데, 왜 그 결과를 후진국 주민들이 책임져야 하냐는 반발이다. 그들은 남반구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부유한 나라의 탄소 배출량보다 훨씬 적은데도 가난한 나라들의 탄소 배출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지난 200년간의 경제적·지정학적 격차를 계속 유지하려는 선진국의 은밀한 시도"라고 비난한다.

툰베리도 이와 인식을 같이한다. 그는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는 식민주의 시대와 그 이전 시기부터 시작되어 누적된 위기"라며 "이 위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나서지 않는 한, 이 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어 "도덕성과 공감, 과학, 미디어, 민주주의 같은 인간의 도구들을 활용해 최악의 결과를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 표지 이미지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책을 읽으며 툰베리를 위시한 과학자들의 글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만인에 의한 투쟁'으로 인간사를 바라보는 홉스식 세계관을 가진 독자라면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한 게 아니냐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다. 기후 위기의 기저에는 타인보다 위에 서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기후 위기 안에는 인종주의, 식민주의 등 온갖 인간의 '흑역사'가 내포해 있다. 그 심연을 올곧이 바라보고 제대로 수술을 집도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다. 툰베리의 말처럼 정말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김영사. 이순희 옮김. 56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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