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尹 ‘포용적 레토릭’ 강화 필요하다

2023. 6. 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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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연세-EU 쟝모네센터 소장
보수 정부는 대체로 소통 취약
통치적 인재만으론 확장 한계
현 정부는 ‘육법당’보다 심각
정책 펼치려면 선거 승리 기본
배제적 修辭는 확장의 걸림돌
민주적 정치기술 다룰 팀 필요

인기 높은 대통령들의 조건으로 외교·경제·국내정치 중 어느 쪽 성공이 가장 중요한지를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런데 이 3요소 중 국내정치 요인이 가장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전두환 정부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과(過)를 많이 지적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경제적·외교안보적 업적도 분명히 있다.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해 경제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달성했다. 때마침 불어온 3저 효과 영향도 있었겠지만, 수출이 회복돼 1986∼1989년 중 한국 경제는 처음으로 무역 흑자를 달성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취소했고 한미동맹을 강화했다.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했다. 1984년 일본 방문을 통해 천황의 과거사에 대한 유감과 사과를 들었으며, 40억 달러의 안보차관도 얻어냈다.

그런데도 전 전 정권은 정치적으론 실패했다. 1987년 6·29선언으로 사실상 퇴진하는 모양새로 마무리된 것은 국내정치 실패 때문이었다. 학술적 규명이 쉽지는 않지만, 가장 큰 실책은 대국민 설득 실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개헌 요구를 묵살했고, 분배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간과했다. 안보도 안정화했고 경제도 성장했지만, 국민의 불만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 낸 결정적 동기는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시위에 참여한 것이었다. 대기업 등에서 일하던 화이트칼라들이 정부에 등을 돌렸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을, 정치적으로는 중도층을 상징하는 집단이었다. 결국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선 후보가 개헌 요구를 수용했고, 선거공약으로 정치 자유화와 경제 민주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한 대통령의 핵심 요소는 궁극적으로 국내정치다. 전 전 정부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치적 레토릭을 구사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레토릭(rhetoric) 또는 수사학(修辭學)이란 ‘동의와 공감을 얻기 위한 기법’이다. 타인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기법이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하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 점을 거의 무시했다. 그는 대통령이 보유한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힘을 보여 주려고 했다. 국민의 감성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둘째, 정치보다는 통치적 인재를 주로 등용했고 보수 색채를 강화했다. 당시 집권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정부는 육사와 서울대 법대 출신이 장악한 육법(陸法)당이라 불렸고, 영남 출신이 강세를 보였다. 이러한 인적 구성에 대해 일반 국민이 느낀 것은 동질감보다는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따라서 민주적 지지의 수평적 확장성은 약해졌고, 정권의 지지 기반은 축소됐다.

일반적으로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약점은 이것이다. 먼저, 현 정부를 탄생시킨 지지 세력 중 하나가 일부 정치적 중도층인데, 이들은 정부를 구성하는 엘리트들과 자신들을 동조화시키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한 능력과 전문성을 위주로 선택한 이들은 특정 대학·특정 학과, 검찰과 관료 그리고 영남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의 핵심 세력으로, 중도 세력과의 연결성이 약하다. 그리고 그 정도는 과거의 보수 정부보다도 심하다.

다음으로, 윤 대통령은 포용적 정치 레토릭을 구사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나 시민사회단체의 부당한 면을 들추고 고발하는 배제적 레토릭은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국민과 소통하고 다가가는 모습이 더 많이 연출돼야 한다. 용산에서 중소기업인들과 ‘치맥’ 자리도 계속 가져야 한다. 그리고 더 넓은 범위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포용적 인사정책도 절실하다.

역대 보수 정부들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소통을 게을리했다. 그러나 정치적 인기와 포퓰리즘은 다르다. 통치가 아닌 민주정치의 시대에 정치인은 인기를 먹고 산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 선거에서의 승리는 필요하다. 대통령실에 ‘레토릭기획팀’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레토릭은 속임수가 아니다. 통치가 아닌 민주적 기술이다. 비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정치인 출신을 앞서기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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