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당하는 '킬러문항'…"사교육 과열 해소" vs "근본문제 아냐"

조소현 2023. 6. 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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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수능 '킬러문항' 배제키로…물수능 우려도

지난 19일 국민의힘과 정부가 '킬러문항'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정부와 여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교과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초고난도 문제가 사교육 과열을 조장한다는 판단에서다.

이같은 취지에 공감하는 입장과 함께 시험 변별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한다.

◆정답률 10% 안팎의 '킬러문항'…사교육 조장?

킬러문항은 정답률이 10% 안팎인 초고난도 문제다. 국어에서는 독서파트 문항으로, 수학에서는 객관식·주관식 마지막 문항(22번, 30번)으로 주로 출제된다. 국어의 경우 대체로 배경지식을 갖춰야 풀 수 있으며 수학은 시간이 많이 든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은 고득점 향방을 가르는 킬러문항에 몰두한다. 다만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교육계에서는 킬러문항이 공교육을 무너뜨린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12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3학년도 수능 수학 문제 46개 중 8개가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됐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단체는 "수능을 공교육 수업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을 국가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라며 "이는 사교육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가속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9~2022년 서울대 및 전국 의대 신입생 출신 지역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와 전국 의대에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학생 5명 가운데 1명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으로 조사됐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킬러문항은)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으로 어지간하면 풀 수 없다"며 "충분한 시간을 주고 역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문제가) 설계돼야 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풀 수 없는 문제를 풀라고 하니 딱 봐도 답을 알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학원에 가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킬러문항 없애면 사교육 사라질까…'물수능' 우려도

당정은 지난 19일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킬러문항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킬러문항을 지목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공정한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겠다"며 킬러문항 배제를 선언했다.

킬러문항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 '근본 원인'일까. 전문가들은 킬러문항이 사교육을 조장하는 측면은 있지만 킬러문항을 사교육 과열의 주된 원인으로 진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남용희 기자

이같이 킬러문항은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 '근본 원인'일까.

전문가들은 일부 공감하면서도 주원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홍민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킬러문항이 사교육 수요를 높인 측면이 있기에 (킬러문항 배제는)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근본 원인은 대학 서열화 등 치열한 경쟁 구조 자체에 있다고 본다. 남보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학원에 가기 때문에 경쟁이 과열돼 있는 한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성명에서 "사교육은 촘촘한 경쟁 교육 체제가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라며 "시험 하나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내버려 두고 아무리 처방을 내려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수능이 쉬워지면 변별력이 사라지고, 운이나 실수에 따라 등급이 결정될 수 있다.

입시업계에서는 '준킬러문항'이 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킬러문항을 없애고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준킬러문항으로 난이도를 조절할 것"이라며 "원래는 킬러문항이 2개 정도 배치되고 준킬러문항이 6개 정도 배치됐다면 준킬러문항이 8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변별력 문항이 사라지니 실수에 불안감이 가중될 수 있다. 늘어나는 준킬러문항이 어느 정도 어려워질지 모르기 때문에 당장 사교육 경쟁이 완화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사교육비 급증…"학력·학벌 따른 사회적 차별 해소해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하는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입시 관련 사교육비는 약 26조원이었다. 지난 2007년 20조 400억원에 비해 29.5% 증가한 수치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역시 지난 2007년 22만 2000원에서 약 41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수능 난이도 조절만으로는 가파른 사교육비 오름세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력·학벌에 따른 사회적 차별부터 해소돼야 입시 경쟁이 완화되고 사교육비도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근본 원인은 승자독식 구조와 직업세계의 이원화, 사회적 양극화 때문"이라며 "요즘은 자녀도 한 명만 낳고 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올인'하려고 한다. 각자도생 사회가 되니 (사교육이) 과열되는 것이다. 대입 경쟁구조를 해결하고 복지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도 "근본적으로 학벌이나 학력이 만들어 내는 임금을 비롯한 사회적 차별을 완화해야 한다"며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 학생들은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 경쟁을 벗어나, 협력을 경험하고, 자기 삶의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건강하고 온전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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