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누구나 친구”…모두의 놀이터 만드는 ‘노원구의 실험’[현장에서]

김보미 기자 2023. 6. 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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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나이 상관없는 통합놀이터 조성에
아이들·주민 등 직접 참여해 개선점 제안
“아동 권리 지킬 수 있는 환경 만들겠다”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원구 통합놀이환경진단 조사단으로 활동하는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있다. 노원구 제공

낮 기온이 29도까지 올랐던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 도착한 이소은·이소현 자매가 그네로 곧장 달려갔다. 모래 바닥인데다 발이 닿는 바닥 부분이 깊게 패어 의자가 어른 허리까지 오는 제법 높은 그네였지만, 초등학생인 둘은 익숙하게 발을 굴려 그네를 탔다.

“여기 놀이터는 그래도 다른 데보다 그네가 많이 있어서 좋아요. 인기가 많은데 항상 하나 두 개밖에 없어서 타려면 엄청 오래 기다리거든요. 그네 숫자도 늘리고 여럿이 같이 돌리고 매달리는 회전무대도 꼭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날 놀이터를 찾은 아이들은 노원구 ‘통합놀이환경진단 조사단’이다. 조사단은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 설계에 참여하기 위해 동네 놀이터를 살펴보고 개선해야 할 점과 새로 설치해야 할 기구 등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조사단원 총 165명 중 아이들이 83명이다.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아이들만 활동한다.

조사단은 노원구가 통합놀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 가운데 모집한 조직이다. 놀이터에 관심 있는 성인뿐 아니라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도 활동할 수 있다.

노원구는 사회복지법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노원구의회와 협약을 맺어 오는 2025년 11월 세계 아동의 날까지 ‘1000일 프로젝트’로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공간 개선 작업을 하기로 했다. 조사단은 우선 8월까지 지역 어린이공원에 놀이 환경을 전수 진단을 맡았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원터근린공원 놀이터에 설치된 바닥 트램폴린. 나이에 상관 없이 트램폴린에 올라 타 발을 구를 수 있다. 김보미 기자

최근 소은·소현 자매는 어머니 김미현씨와 함께 월계동 은하수어린이공원을 조사했다. 자투리땅에 놀이 시설을 설치한 작은 놀이터였다. 김씨는 “입구가 찻길 바로 옆이라 아이들이 이용하기에 위험해 보여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며 “모래 놀이터이니 수로 시설을 추가하면 흙 놀이도 가능할 것 같았다”고 의견을 냈다.

통합놀이터는 장애나 나이에 상관없이 뛰어놀 수 있도록 공간과 시설을 구성한 모델이다. 자연스럽게 장애 아동의 놀이 공간을 확보하고 보호자들의 접근도도 높인다. 휠체어가 다니기 편하도록 놀이터 바닥은 모래 대신 우레탄 등으로 바닥을 깔고 휠체어나 보조기구에 탄 채로 즐길 수 있는 그네나 회전무대 등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비장애 아동의 안전사고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구조이지만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개념이다. 현재 기준 전국 어린이놀이터 7800여개(행정안전부 2021년 기준) 가운데 통합놀이터는 20여곳으로 약 0.03%에 불과하다.

특히 야외 놀이터는 실내 놀이 공간보다 장애 아동과 보호자, 주민 등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접촉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노연수 노원구의원은 “통합놀이터를 만들고 놀이 지도사를 두면 실내에 국한된 (아동) 돌봄을 실외로 확장할 수 있다”며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지해 아이들이 친구로서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8년 통합놀이터로 전환한 서울 노원구 마들체육공원 내 초록숲놀이터에서 아이들이 회전무대를 돌리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홈페이지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조사단원 김윤주씨는 “장애아 개인별로 좋아하는 것이 모두 다르고 지체 장애의 경우 접근 가능한 기구도 다른 만큼 다양한 놀이 기구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며 “보호자들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놀이터 벤치가 충분히 설치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조사단의 관내 진단 결과와 의견을 취합한 뒤 놀이터 개선 계획에 이를 포함해 실행할 방침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모든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놀이터라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사업의 취지”라며 “놀 권리 등 아동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소은양은 “회전무대는 누구든 밀거나 매달려서 같이 빙글빙글 돌 수 있어 좋다. 동네에 꼭 생겨서 친구들과 타고 싶다”며 “친구들과 함께라면 집에서 유튜브 등 영상 보는 것보다 놀이터에서 노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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