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지금처럼 간다면, 양양 같은 낙뢰 더 잦아지나요?
A. 지구온난화로 대기불안정 현상 강화
낙뢰 잦아지는 횟수만큼 사고 위험 커져요
지난 10일, 강원도 양양 설악해변에 ‘낙뢰’가 떨어지면서 서핑을 하러 온 30대 남성이 목숨을 잃고 일행 다섯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낙뢰를 맞으면 즉사할 확률은 무려 80%(한국전기연구원)나 됩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기 전 발생하는 천둥·번개가 이렇게 무서운 위력을 가졌다니,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낙뢰 사고 피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낙뢰는 번개구름(뇌운) 안의 전하가 지상으로 떨어져 방전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낙뢰는 빛의 속도의 1/10 정도인 매우 빠른 전기 방전 현상으로, 태양 표면 온도보다 약 4배 이상 뜨거운 2만7천도 정도의 열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런 높은 에너지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빛과 소리의 형태로 변환되는데, 이때 번쩍하는 불빛이 ‘번개’, 주변 공기가 급속히 팽창하며 발생하는 소리가 ‘천둥’입니다.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고 습도가 증가하며 대기가 불안정해지면 낙뢰 가능성이 커집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낙뢰 빈도는 더 많이 증가할 거라고 합니다.
지난 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 높아질 때마다 불을 낼 위험이 있는 강한 번개가 10%씩 증가한다고 합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안달루시아 천체물리학 연구소 연구진은 2009~2011년 사이의 낙뢰 빈도와 향후 기상 조건 등을 입력한 시뮬레이션 검토 결과,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심화할 경우 2090년대쯤이면 세계 곳곳이 낙뢰로 인한 산불 위험이 매우 커질 거라고 예측했는데요, 연구진은 육지에서 오래 지속하는 번개가 2009~2011년에 비해 47%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남미, 북미,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는 낙뢰로 인한 산불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어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 연구진들 또한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다는 가정하에 세기말까지 낙뢰가 2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 연구진들은 지구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낙뢰로 인한 화재 발생이 39~6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죠.
낙뢰의 증가는 지구에 악순환을 불러옵니다. 기후변화로 낙뢰가 증가하고, 낙뢰로 인해 산불 등 화재가 일어나면 산림 생태계가 훼손돼 산림의 탄소흡수량 감소가 가속하고, 다시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는 늪에 빠지는 거죠.
번개가 대기 중 질소와 산소 분자를 분해해 온실가스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을 생성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21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진은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를 한 과학 저널에 보고했는데요. 연구진은 뇌우 방전이 매우 많은 양의 수산화기(OH) 등을 생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실비아 에드거튼은 “수산화기가 일부 대기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지만, 휘발성 유기 화합물 등과 반응하면 또 다른 대기 오염 물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기불안정으로 천둥·번개·돌풍을 동반한 요란한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가 매우 잦습니다. 우리도 기후변화로 인한 낙뢰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못한 것일까요?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일단 “기후변화가 대기불안정을 증가시켰다고 볼 만한 개연성은 있지만, 최근 국내 날씨에 (당장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상청이 해마다 발행하는 낙뢰연보를 봐도, 2022년 낙뢰 횟수가 최근 10년 연평균 대비 대체로 적게 관측되기도 했습니다. 내륙 일부 지역과 서해를 중심으로 연평균보다 35% 이상 낙뢰 횟수가 증가했지만, 예의주시해야 할 만큼 이례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우 통보관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불안정 현상이 강화될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대기불안정이란 무거운 찬 공기는 아래로, 가벼운 따뜻한 공기는 위로 가려는 대기의 성질을 역전하는 현상입니다. 대기불안정은 뜨거운 햇볕으로 지상이 가열되어 대기 하층부에 뜨거운 수증기가 몰려 있고, 위쪽에 차가운 공기가 있어 둘 사이의 온도 차가 커질 때 발생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다와 육지가 계속 뜨거워지면 아래에 있는 뜨거운 열기가 쌓여 위로 가고 이게 대기 상층부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자연은 보상성이란 성질이 있어서 한번 온도가 극도로 올라갔다면, 그 속도만큼 빨리 내려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잔잔했던 대기가 한번 ‘출렁’하며 큰 진폭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거지요. 우 통보관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기후변화”라며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기후위기가 극심해져 서구 연구진들이 우려하듯 지금보다 낙뢰가 2배 넘게 증가하고, 이로 인한 대형 산불 경보가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뉴스가 날씨 예보가 되지 않길 바라봅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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