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2030]③ 핵심 공정까지 외국인 손에 맡기는 中企... “청년들, 삼성만 원하나” 울분
입국하자마자 “친구 있는 사업장 보내달라” 태업
식당·호텔, 조선족 고용 가능해졌지만 일손 부족해
직업계高 취업보다 진학이 많아... “획기적 유인 필요”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2030 세대가 6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니트(NEET·교육을 받거나 직업 훈련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족(族)이 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취업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늘어나는 임금 격차...이런 여러 요인들이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을 ‘그냥 놀게’ 만들어 버린다.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새로운 인력이 수혈되지 않는 노동시장은 생산과 소비가 멈춰 경제 전체의 조로(早老)화를 부른다. 경제활동인구로의 편입을 포기한 2030 세대가 급증한 원인과 영향, 그 대책을 5부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20일 오후 2시,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한 주물 주조 공장. 대형 선박, 자동차, 로봇 등에 들어가는 금속 소재를 만드는 공정의 핵심인 용해 작업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3명이 손짓 발짓을 해가며 소통하고 있었다. 3명은 서로 다른 동남아 국가 국적으로 한국인 관리자는 물론 자기들끼리도 대화가 잘 안됐다. 이들은 정해진 매뉴얼을 각각 이해되는대로 받아들여 어렵사리 공정을 이어 나갔다.
고압 전류로 고철을 녹이는 용해 작업은 제품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생산 단계로 작업 표준과 세부 공정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인 직원들이 도맡아왔다. 그러나 4~5년 전부터는 이 작업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고 있다. 이 공정뿐 아니라 주물 조형(造形·기본 형태를 만드는 것), 틀에 주입하는 것부터 모래를 털어내는 탈사, 후처리 작업까지 전부 외국인이 도맡아 한다. 이 회사 근로자 40여 명 중 사무직과 현장 관리직 등 8명을 제외하고 전부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리직 중 2명은 70대로 은퇴할 예정이라 주요 기술 명맥마저 끊길 위기에 있다.
이 회사를 포함해 40여 개 주물 주조 업체가 속한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의 공병호 상근이사는 “워크넷(고용노동부의 구인·구직 사이트)에 365일 24시간 구인 공고를 올려도 1명도 안 온다”며 “청년 실업자가 수십만 명이라는데 삼성전자 같은 곳만 원하는 건지…”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주로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주조업계는 인력 고령화가 극심한 업종 중 하나다. 공 이사는 “국내 인력 부재로 기술 전수가 안 되면 외국 의존도가 커진다”며 “외국 인력은 최대 4년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대기업·공기업 아니면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중소기업은 인력난 심화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선 외국인 근로자가 갑(甲)이 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하는 게 기업에 비용 절감을 위한 선택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이들이 없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국인의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한편, 국내 청년층이 유입될 수 있도록 고졸 인재 맞춤형 중소기업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 “다른 사업장 갈래” 외국인 근로자에 乙된 중소기업들
서울 구로구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성원에이씨공업의 최원충 대표는 작년 11월 노동청에 고발당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외국인 근로자가 “지인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다”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해 거절했더니 급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신고한 것이다. 급여나 수당은 이미 서로 합의 돼 계약서에 서명까지 마친 후였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는 이직하려면 사업주가 사인을 해줘야 하는데 안 해주면 태업하고 아프다고 드러눕고 결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절차를 대리해 주는 브로커들도 생겨나, 50만원을 주면 (사업주를) 고발하거나 이직할 때 돈을 더 받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알려준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면 국내 인력만 뽑고 싶지만 지원자가 없어 외국인 근로자를 모셔 와야 하는 처지다. 최 대표가 운영하는 공장 직원 16명 중 7명이 외국인이다. 한국인 직원 대부분이 60대이고 가장 젊은 직원이 55세다. 그는 “작년에 공고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중소기업 병역 특례병으로 지원했는데 한 달도 안 돼 다 나갔다”며 “우리 생산직은 최소 1년은 배워야 기술 습득이 되는데 반년도 안 돼 나간다고 하면 효율이 확 떨어진다”고 했다.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좀 더 편한 근무지로 이동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원칙적으로 정부의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처음 근무를 시작한 기업에서 계속 일해야 하지만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면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변경 신청은 입국일로부터 3년 내 3회로 제한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E9 비자로 입국해 첫 직장에서 1년 근무를 못 채우고 이직한 외국인 노동자 비중은 2017년 39.9%에서 2020년 42.3%로 늘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1월 9∼25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 중인 중소 제조업체 1000개를 상대로 설문했더니 응답자 68%가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위해 계약 해지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요구한 시점은 ‘입국 후 3개월 이내(25.9%)’가 많았고 요구 사유로는 ‘친구 혹은 같은 국적 근로자와 근무 희망’이 38.5%에 달했다.
사업주들은 외국인 근로자 채용 비용이 더 이상 내국인보다 크게 저렴하지 않고 한국인 수준의 생산성을 갖추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고 토로한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지출하는 돈은 인건비와 숙식비를 더해 월평균 284만2000원으로 같은 조건인 내국인 근로자와 거의 비슷하다. 업무 내용과 연차가 같은 내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을 100이라고 할 때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은 근무 기간이 ▲3개월 미만일 때 53.8% ▲6개월~1년 80.3% ▲2~3년 90.3% ▲3년 이상 93% 등 서서히 올라간다.
◇ 식당·숙박업소, 조선족 고용 가능해졌지만 여전한 인력난
중소기업들이 고용한 외국인 관리에 애로를 겪고 있다면, 뽑을 수 있는 인력 규모 자체가 너무 적어 이들을 부러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곳이 외식업계와 호텔 등 숙박업계다. 식당·숙박업소는 설거지와 서빙, 청소 등 단순 노무 업무를 할 사람이 없어 아우성친다. 청년들이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함께 해야 하는 대면 서비스업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 5월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이 70% 이상인 재외동포(F-4) 비자 소지자도 음식업·숙박업 총 6개 직종에서 취업할 수 있게 고시를 개정했다. 기존에 단순 노무 행위는 취업 제한 업종에 해당해 식당이나 호텔 등 숙박업소에서 주방 보조 등의 업무를 할 수 없었는데 가능해졌다. 국내 F-4 비자 소지자는 2021년 기준 47만8442명이다.
외식업계에선 그런데도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E-9 비자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도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조선족의 경우 법적으로 허용되기 전부터 식당에서 근무한 경우가 많아 인력이 늘어났다고 보기 힘들다고 한다. 호텔업계는 F-4 취업 가능 업종에서 청소 전문 인력이 제외돼 불만이 많다.
고용노동부가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장 부족 인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적극적인 구인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충원하지 못한 ‘미충원 인원’은 2019년 4분기 7만4000명에서 작년 3분기 18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제조업의 미충원인원이 전년 대비 1만7000명 늘어났고 다음으로 숙박·음식점업 7000명, 도소매업 6000명 순으로 증가 폭이 컸다.
◇ ‘현장형 인재 양성’ 목적 직업계고, 취업보다 진학이 더 많아
정부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공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 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지만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직업계 고등학교 작년 졸업자 중 취업자 비율은 29.6%다. 전년도 28.6%에서 상승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그친다. 특히 취업자(2만2709명)보다 진학자(3만4686명)가 더 많아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드러낸다.
현장에선 정부가 산업기능요원 수를 늘리고 비(非)수도권 근무 중소기업 청년에 대한 주택 무이자 대출 등 획기적인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산업기능요원은 군대 필요 인원을 충원한 뒤 남는 병역자원에 대해 병무청이 지정한 기업체에서 대체 복무토록 하는 제도다. 현역 입영대상자는 34개월, 보충역은 23개월을 각각 복무한다. 병무청이 매년 인력을 배정하는데 올해 배정 인원은 3200명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청년 채용 방안은 1~2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정권과 무관하게 10년 후를 내다본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저임금 장시간 근로에 시달릴 것이란 우려가 많은데 이런 사회적 인식이 없어지도록 청년이 일하고 싶어할 만한 작업 문화를 만들고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이윤 창출에 대한 보상을 기업이 강화하면서 정부가 그런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 등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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