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림의 HR스토리] 문학 감성을 가진 글 쓰고 강연하는 의사, 남궁인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년에서 사람들이 동경하는 글을 쓰는 작가로, 자신의 경험을 말로 풀어내 공감을 얻는 강연자로... 여기 다양한 부캐(부캐릭터)를 가진 의사가 있다.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제법 안온한 날들을 꿈꾸는 남궁인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남궁인 교수와의 일문일답 인터뷰.
Q. 안녕하세요. 교수님, 반갑습니다. 먼저 간략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남궁인입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문학 소년이었어요. 그냥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죠. 그렇지만, 저의 본분은 학생이었고, 제 주변 친구들이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었어요. ‘나도 친구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나름 자아 탐색의 과정이 있던 것 같아요. 문과 과목들이 재미있었지만, 이과 성적이 훨씬 좋게 나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상황에 맞춰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수능을 잘 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의대에 들어가고 의사가 되었네요.
Q.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해 꺼리는 응급의학과를 택한 이유는?
응급의학과의 다이내믹함과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는 점이 저와 잘 맞았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다양한 병변의 환자를 만나고 진료하는 부분이 흥미 있어요. 한 병변, 한 분야의 환자들이 아닌 정말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 곳이 응급실입니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 질환, 관련 분야 모두 다르니까요. 그렇다 보니 같은 설명을 반복할 일도 거의 없고, 바이탈도 다뤄야 하고, 직접 *술기를 다룰 일도 많아서 일 자체가 다이내믹합니다. 그리고, 응급의학과의 경우 다른 과나 개원했을 경우와 달리 퇴근 후에는 저를 찾는 연락이 오지 않아요. 일과 삶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죠. 이 부분도 저를 응급의학과에 지금까지 있게 했네요.
(*술기 : 의사가 환자의 몸에 어떠한 목적을 갖고 행하는 의학적인 행동)
Q. 책도 여러 권 출간하셨는데, 가장 애정이 가는 책은?
‘만약은 없다’ 저의 첫 책이 가장 애정이 갑니다. 제 이름으로 나온 첫 책이기도 하고 저를 알리게 된 책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나온 지가 벌써 7년이 된 책인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꾸준히 읽어 주시더라고요. 처음 책을 낼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죠.
이 책을 쓸 때 제가 근무한 환경, 과중하게 주어진 책임, 그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을 고백해야 했어요. 이러한 상황을 시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표현해 보았죠. 다시 읽어보니 뭔가 ‘빈틈없는 우울감’, ‘희망이라고는 없는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 그런 것들이 느껴지더라고요. 당시 제가 시적인 표현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지금의 저는 ‘만약은 없다’와 같은 글은 앞으로 못 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갑니다.
네, 기억납니다. 2015년, 지방에 있는 한 의과대학교에서 진행한 오프라인 강연이었어요. 당시 페이스북에 간간히 글을 썼을 뿐, 출간도 하지 않았을 때인데, 강연 요청이 들어온 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와중,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글을 쓰게 된 이야기, 그리고 의대생 때 제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설픈 내용이었을 텐데 학생들이 잘 들어주었던 것 같아요. 처음 연단에 섰을 때 많이 긴장하고 떨렸는데 말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편해지더라고요.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또 누군가는 듣고 그걸 통해 배워간다는 세상을 처음 알게 되었죠. 첫 강의를 계기로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주로 어떤 주제와 콘텐츠로 강의하세요?
기업 및 지자체 임직원분들, 학생, 일반인 대상까지 다양하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강연을 하면서 프로의식을 갖고 대상과 주제에 맞는 강의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습니다.
기업 강연에서는 보통 요청하는 주제에 맞게 강의를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협동/협의에 관한 강의를 했어요. 의사가 무슨 협업을 강의하나 하실 수 있겠지만, 응급실에는 정말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고, 이 구성원들의 협업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면, 구급차 직원부터 진단, 1차 처치, 수술 등 모든 과정에서 협업이 필요합니다. 기업과 병원은 다른 곳이지만, 협업이라는 주제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학생들 대상으로는 주로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보통의 의대생들과는 다르게 정말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의대 입학한 후, 그 시절 유행하는 다양한 머리 스타일은 다 해 봤고요. 레게 머리까지…
어학연수는 물론, 시인 기행, 세계 일주, 사진 출사, 행사장 아르바이트 등 보통의 의대생들이 공부만 했던 것과 달리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험들이 지금의 주요한 강의 소재들이 되어 주고 있어요.
관공서 대상 강의는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아동학대로 응급실에 아이들이 오는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공론화되어 좋아지고 있지만,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 대상 강의는 다양하게 진행합니다. 최근에 교보문고 초청으로 글쓰기에 관한 강연을 진행한적이 있는데요. 마치 제가 글쓰기 일타강사처럼 느껴졌어요. 이 강의를 진행하면서 매우 많은 분들이 글쓰기에 관한 열망이 있구나를 느꼈습니다.
이러한 강연들 외에 본업과 관련된 일반적인 의학 강연 및 유튜브 출연도 간간이 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을 기반으로 강연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참 다양하고 많은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진행한 강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약 2,000명의 학생 앞에서 20분 정도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강의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이대 재단에서 저를 초청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대 총장님께서도 강연을 들으러 현장에 계셨더라고요. ‘이대 총장님께서 제 강의를...?’ 이라는 생각을 하니 영광이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Q. 글쓰기 관련 강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분들께 해줄 조언이 있을까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분들께는 일단 많이 읽고, 꾸준히 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짜 많이 쓰는 게 중요해요. 많은 분들이 제 글쓰기가 혜성처럼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절대 아닙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글쓰기를 쉬어 본 적이 없어요.
처음에는 일기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이후, 대학에 들어가니 PC 통신의 시대가 저물고 싸이월드가 부상하고 있더라고요. 싸이월드는 제 생각, 일상을 적기에 너무나 최적화된 공간이었어요.
이렇게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어 왔어요. 일기의 공백은 절대 일주일을 넘지 않았고요. 정말이지 꾸준히, 많이 적는 것 외에 글쓰기의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이 외에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필사도 해 보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글도 점점 발전하더라고요.
Q. 의사, 작가, 강사 등 다양한 분야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N잡러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분야는?
(*N잡러 :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이라는 뜻의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생계유지를 위한 본업 외에도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현재 의사, 작가, 강사 3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사는 말로 글을 풀어낸다고 생각하면 작가와 같은 군으로 묶어도 좋을 것 같고요. 그에 반해 의업은 완전히 다른 직업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작가와 강사에 더 애착이 갔어요. 글을 쓰는 게 평생의 꿈이었고, 아무래도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면이 필요한 직업이라 더 애착이 갔던 거 같아요.
반면, 의사라는 직업은 배운 대로 환자의 증상에 맞춰 불편함을 덜어주고 병을 고쳐주면 되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다 보니 작가와 강사라는 직업에 좀 더 애착이 간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에는 의사 본업에 더 애착이 갑니다. 환자분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그분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다 보니 제가 꼭 필요한 존재로 느껴지더라고요. 좋은 동료들과 응급실에서 살 부딪히며 일하다 보면 정말 보람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애착이 많이 갑니다.
Q. 마지막으로 인간 남궁인이 가지고 있는 꿈이 있습니까?
작가로서는 사람들에게 언급될 만큼 좋은 문장이 있는 좋은 책을 쓰는 게 꿈입니다. 최근에 칼럼을 하나 기고했어요. 매우 평범한 이야기였죠. 평소처럼 칼럼을 작성하다가 마지막 두 문장을 쓰는데 뭔가 울컥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두 문장을 매우 공들여서 썼어요. 쓰면서 사 람들이 이 문장을 좋아해 주면 좋겠다 생각했죠. 칼럼이 공개되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 문장을 언급해 주시더라고요. 필사도 해주시고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문장을 썼다는 생각에 많이 보람되더라고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좋은 문장을 많이 쓰고 싶습니다.
반면에 의사 남궁인은 동료들과 함께 조화롭게 일하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이 권역 응급의료센터로 지정이 되어 있어요. 일하다 보면 모든 사람이 상처받지 않게 센터를 컨트롤하기가 사실상 힘들어요. 그래서 의사로서는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혜택이 가고 그들의 불편함을 줄이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물론, 궁극적으로는 환자분들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겠지만요.
오늘 시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김미림
기사 작성 및 편집: 김미림, 박나현
[김미림의 HR스토리는 매일경제교육센터 MK speake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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