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도 오픈런, 인력부족으로 응급 의료체계 붕괴 직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업 선언,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등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급감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나영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을 만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 현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폐과를 선언했다. 실제로 폐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의사가 소아청소년 전문 진료를 포기하고 일반 진료로 돌아서는 의료 환경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이는 현재 소아청소년과가 처한 위기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최근엔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이 화제가 됐다. 계속되는 폐업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줄어들고 전공의가 부족해 야간, 휴일에는 휴진하는 병원이 늘자 부모들이 연차를 내고 꼭두새벽부터 병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면서다.
최근 대입 수험생들이 의대에 쏠려 다른 자연과학 계열과 공대 생태계가 위협받는다는 뉴스와는 대비되는 풍경이다. 그 많은 의대생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른바 인기 학과인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 전공의가 쏠리는 것이라면 불균형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업 선언에 우려를 표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나영호 학회장을 만났다.
나영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은 경희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이자 소아 환자를 40년 넘게 진료해왔다. 나영호 학회장이 이끄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성명에 대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처한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폐업’이라는 말은 과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전문 과목을 끝까지 사수하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해외 학회 일정으로 출국을 하루 앞둔 나영호 학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소아 환자 진료, 2, 3배 힘들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의사회) 임원분들과 자리를 가졌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폐업은 "지나친 표현인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드렸는데 그대로 진행하시더군요. 소아청소년과의 위급한 상황은 공감이 가는 바이나, 의사회 기자회견 이후 상당수의 환자와 보호자가 정말 소아청소년과들이 문을 닫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습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소아청소년과는 앞으로 미래가 어둡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요. 안 그래도 부족한 전공의 지원율이 올해 26%예요. 내년에는 최소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우려됩니다.
최근 수험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과는 무관하네요.
업계에서는 흔히 필수 진료 과목으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언급합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과이자 응급 상황도 많고 중증 질환도 많은 과를 일컫는 거죠. 다시 말하면, 업무에 부하가 많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소아청소년과는 신생아 중환자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고강도 수련을 거치는데, 이후 개업을 하거나 봉직했을 때 기대한 것보다 급여가 적다 보니 벌어지는 일입니다. 소아청소년과는 일반 환자에 비해 진료 시간도 2, 3배 걸리는데 의료수가가 낮아 초진은 1000원 남짓, 재진은 700원 정도를 가져갑니다. 현재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도 의무감에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죠.
아이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진료가 더 어렵군요.
맞습니다. 일반 환자들에 비해 소통도 어렵고 협조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령 이경이라고 해서 약간 뾰족한 도구로 귀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아이가 조금만 움직이면 귀 벽이 긁히고 심한 경우에는 고막이 다치기도 해요. 그런데 이런 경우 온전히 의사에게 책임 소재를 두다 보니 더욱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업무 강도나 진료의 어려움이 타 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전공의 지원율이 급감했는데요. 원인은 무엇인가요.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19년 80%, 2020년 74%에서 2021년 38% 그리고 2022년 27.5%까지 떨어졌습니다. 지원율이 202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추락한 원인은 코로나19였습니다. 소아청소년과 대부분 환자가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을 찾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서부터 내원하는 일이 적다 보니 수입이 많게는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이 여파로 폐업하거나 일반 의원으로 간판을 바꾼 분들이 많습니다.
교수들이 당직 서며 버티고 있는 실정
환자들이 점점 병원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이미 소아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응급실이 많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도 응급실에서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안 합니다. 저희가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이미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는 병원이 80%에 육박합니다. 한국은 원칙상 입원 환자를 전공의가 보게 돼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 필요한 전공의가 정원의 39%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전공의가 그렇게 부족한데 병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건가요.
저희 병원의 경우에는 교수들이 돌아가며 몇 주에 한 번씩 병실 당직을 서고 있습니다. 아마 전국의 대다수 종합병원 실정도 비슷할 겁니다. 밖에서 보면 티가 잘 안 나지만 없는 인원을 투입해 상황을 유지 중인 형편입니다.
교수들까지 당직을 서면 현 상황이 유지되긴 어렵겠군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환자 수가 많아지면 의료사고 비율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의료사고가 나도 의사들이 전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의 보호는 전혀 받지 못하면서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니 차라리 응급실 문을 닫고 외래환자만 보자는 이야기도 적잖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응급진료 체계가 이미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해법으로는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일단 전공의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전공의 부족 현상을 겪은 외과·흉부외과 전공의들에겐 교육비라는 명목으로 추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소아 환자 연령별 의료수가 가산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추산하기에 2배까지 인상이 필요하지만 현재 정부와 30~50% 인상을 두고 논의 중입니다. 또한 현재 전공의들이 신생아 중환자실, 응급센터 병동 진료까지 책임지느라 격무에 시달립니다. 그러면 향후 전공의 정원을 다시 채워도 인력이 부족한 현상으로 이어질 겁니다. 전문의 채용 요건을 완화해 정부와 병원이 전문의 임금을 절반씩 분담하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출산이라는 인구구조 변화로 소아청소년과의 하락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한국의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출산을 겪는 다른 나라는 정부가 나서 소아청소년과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한 10~15년 전에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환자 수가 적어져 의사들의 수입이 감소하자 일본 정부는 환자를 연령별로 나누어 진료비를 가산해줬습니다. 100% 올린 연령층도 있어 환자가 적더라도 병원 운영을 해나갈 수 있었죠. 현재 일본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을 다 채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료수가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입원 환자에 대한 연령별 의료수가를 30% 올리면 한 해 약 300억 원, 50% 올리면 약 360억 원 정도 예산이 소요됩니다. 의료수가 조정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약 2조 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의료수가만 오르는 게 아니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등 다른 일반 의원 수가도 오르니까요. 연령별 가산과 달리 의료수가는 재정과 관련된 문제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단시간에 인상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수가 인상보다 현실적인 방안인 연령별 가산을 먼저 말씀드리는 겁니다.
비대면 진료 확대가 전공의 부족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제가 화상으로 환자를 본다면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다"는 말밖에 못 할 것 같습니다. 환자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화상으로 문제가 없어 보여 며칠 지켜보자고 했는데 이튿날 상황이 악화되면 온전히 의사가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의사가 오진한 게 되니까요. 오지나 산간 지역에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현재 인력 부족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의대 정원 확대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한국은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2.5명(OECD는 3.7명)이라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필수 과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한 겁니다. 지금 기피 학과가 되어버린 필수 과에 대한 지원책 없이 의대 정원만 확대한다면 오히려 인기 학과에 의대생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더욱 격화되리라 예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저는 아이들을 진료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됐는데, 아이들 진료가 좋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일하며 만나는 전공의, 인턴 선생님 중에 저처럼 아이를 좋아하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소아청소년과 미래가 어두우니 하지 말라고 말린답니다. 얼른 정부에서 화끈하게 도와줘 이런 상황을 타개했으면 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18세 미만 청소년이 전체 인구의 18% 정도 됩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아이인데, 이들이 건강하게 잘 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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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해윤 기자 뉴시스 뉴스1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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