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라면값 인하" 부총리…'진짜' 속내는?
"라면값 내리면 우리야 정말 좋죠.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예요? 밀가루 말고도 인건비하고 포장재 가격 같은 게 다 포함됐을 텐데…"
세종정부청사에 근무하는 한 사무관이 식사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라면 한 개의 가격을 좌우하는 요소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주말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국제 밀 가격이 50% 정도 내렸다. 그러니 라면값도 적정하게 내려야 한다', '소비자단체가 활발하게 압력을 행사해달라' 정도의 취지였습니다. 이쯤 되면 조금 헷갈립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겠다더니 라면 제조사들의 팔목을 비틀고 있는 겁니다.
라면 제조사, 국제 밀 가격의 '직접' 영향권에 있을까?
"국제 밀 가격 50% 하락" vs "평년보다 여전히 비싸"
밀 가격 떨어지면 바로 라면 가격 인하 가능?
어제(20일), 현재 이 순간에 제분업체 공장에서 밀가루가 되고 있는 원맥은 3~6개월 전에 제분업체가 국제시장에서 사들인 밀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분업체가 올 1월에서 3월 사이 수입한 밀을 가공해 이윤을 붙여 라면 제조사들에 넘긴 겁니다. 밀 가격은 지금 하향세이니까 라면 제조사들이 더 싼 밀가루를 공급받는 시기는 올 3분기는 지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라면 제조사가 가격이 50% 떨어진 밀로 라면을 만드는 시점은(제분업체가 가격 인하를 해준다는 조건이 있을 경우) 8월~11월 사이가 됩니다. 만약 추 부총리의 '청부 압력'이 먹혀서 제조사들이 라면값을 내릴 경우 이 시점이 유력할 수 있습니다. 다만 라면 한 개 생산하는데 밀이 차지하는 비중은 원가의 55~60% 정도인데 반해 노동력, 원자재, 전기, 가스, 수도, 운송 같은 비용이 다 올랐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내리더라도 찔끔 혹은 아예 안 내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제통 추 부총리, 이런 역학 관계 정말 몰랐나?
가격으로 따지면 라면 한 그릇은 500원~1천 원 사이 올랐고, 라면 한 개는 50원~100원쯤 인상됐습니다. 여기서 소비자 체감은 어떤 게 더 크게 다가올까요? 눈여겨볼 부분은 각각의 라면 품목이 소비자물가 통계에 기여하는 정도, 즉 기여도입니다. '외식'의 라면은 0.007에 불과하지만 '가공식품'의 라면은 0.036에 달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외식'의 라면 가격이 좀 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겠지만, 물가를 최대한 낮춰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체감'은 덜 하더라도 물가를 더 확실하게 떨어뜨릴 수 있는 '가공식품'의 라면 가격이 팍팍 내려가기를 간절히 바랄 겁니다. 그래야 2%대 물가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라면 제조사들의 업보
반면에 지난해 9월부터 라면 제조사들, '이러단 망한다'면서 가격을 대폭 올렸습니다. 농심이 평균 11.3%, 오뚜기 11%, 팔도 9.8%, 삼양식품 9.7% 정도 인상했죠. 그런데 올 1분기 라면 제조사들의 실적은 놀라웠습니다. 농심의 영업이익은 638억 원, 지난해보다 86% 가까이 뛰었습니다. 오뚜기도 653억 원으로 11% 정도 호실적이 나왔습니다. 원가 절감과 기술 개발 등 자구책으로 돈 벌어야지 서민들 호주머니에서 50원~100원씩 가져와서 이익 본 거 아니냐는 싸늘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자신들은 50원, 100원 정도 올리는 거라고 항변해도 분식집에서는 그게 기폭제가 돼서 라면 한 그릇 가격을 또 올리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다는 걸 감안한다면 국민 모두 힘들었던 작년에 '꼭. 그렇게. 라면 가격을. 올려야만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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