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올랐다며 아이스크림·과자값 올리고 버티기… 식품사 1분기 이익만 수백억

양범수 기자 2023. 6. 2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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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가격 올린 식품사 6곳 1분기 이익 평균 53% 늘어
초코파이 16% 올린 오리온, 1분기 영업익 10% 상승
농심·롯데웰푸드·빙그레·롯데칠성 모두 판매가 대거 올려
원가 인상 핑계로 가격 연이어 올리더니...원가 하락에는 인하 검토 안해

“(라면) 기업이 밀 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의 발언 이후 식품회사가 원자재값 상승을 이유로 영업이익을 늘리기에 골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재값이 오를 땐 판매가격을 재빠르게 올리고 반대로 원자재값이 떨어질 땐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수익성 강화에만 나선다는 것이다.

21일 조선비즈가 오리온과 빙그레·농심·롯데칠성·롯데웰푸드·SPC 등 식품 회사들의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원·부자재비 상승을 이유로 판매 가격을 올린 이후 영업이익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지적과 소비자의 비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식품업계는 정부가 과도한 개입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일부 주요 원재료 가격이 내려가긴 했지만, 인건비·물류비 등의 부담은 여전해 당장 판매가격을 인하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선 소비자 부담만 커지고 식품회사의 곳간만 채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서는 지적한 대로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탐욕+인플레이션)을 식품회사가 이끌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화두를 던진 만큼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상시 할인행사에 나서는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을 낮출 순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서민 먹거리가 줄이어 오르자 라면과 과자·빵 등 일부가 가격을 낮추고 상시 행사에 나서는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을 낮춘 바 있다.

그래픽=정서희

◇ 주요 제과·빙과·음료 업체 1분기 영업익 전년比 53% 늘어

이날 조선비즈가 주요 제과·빙과·음료 업체들의 1분기 개별 기준 영업이익을 취합한 결과, 식품회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대비 평균 5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 모두 지난해 원·부자재 가격 인상을 이유로 제품 판매 가격을 평균 두 자릿수 올렸는데, 원가부담이 늘었다고 하면서도 영업이익이 늘어난 셈이다.

빙과·제과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롯데웰푸드의 1분기 개별기준 영업이익은 1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6억원 대비 약 50%나 증가했다. 롯데웰푸드가 자일리톨·빼빼로·몽쉘·월드콘 등의 주요 제품 판매 가격을 약 9% 올린 것이 영향을 줬다.

롯데웰푸드와 빙과 시장 점유율 1위를 놓고 다투는 빙그레의 1분기 영업이익은 13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0억원에 비해 약 179% 늘었다. 같은 기간 바나나맛우유·요플레·따옴·투게더 등 빙그레의 주요 제품 판매 가격은 17% 인상됐다.

오리온과 농심의 상황도 같다. 오리온의 1분기 개별기준 영업이익은 37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늘었다. 오리온은 지난해 9월 초코파이·포카칩·꼬북칩·예감 등 주요 제품 16종의 판매 가격을 평균 16% 정도 올렸다.

농심의 지난 1분기 개별 기준 영업이익은 41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45억원 대비 51% 늘었다.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꿀꽈배기 등 농심의 주요 제품의 판매 가격은 같은 기간 약 9% 올랐다.

양산빵 부문 점유율 1위인 SPC삼립의 지난 1분기 개별 기준 영업이익은 14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늘었다. 정통크림빵·누네띠네·미니찰떡 등 SPC삼립의 주요 제품의 출고 가격은 12% 인상됐다.

음료 회사도 마찬가지다. 음료 시장 점유율 1위인 롯데칠성음료의 음료 사업 부문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418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345억원대비 약 21% 늘었다. 펩시콜라·레쓰비·칠성사이다·칸타타 등 롯데칠성음료의 주요 제품의 판매 가격은 같은 기간 약 9% 올랐다.

업체들의 연이은 가격 인상으로 각 품목의 소비자 물가지수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0년도 가격을 기준(100)으로 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초콜릿 품목은 122.48을 기록했다. 사탕과 껌도 각각 113.82, 112.62를 기록했다. 아이스크림 118.02, 비스킷 124.45, 스낵과자 117.38, 파이 111.21, 탄산음료 113.73 등을 기록했다.

◇ 원가 부담으로 판매가 올린 식품사들… 원재료 인하에 ‘제 몫 챙기기’

식품업체들이 앞다퉈 제품가격을 올린 배경엔 급격한 원가 상승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가가 크게 하락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소맥(SRW) 가격은 1t당 227.7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45.69% 내렸고, 지난달 국제 대두유 거래 가격도 1095.02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0.58% 내렸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제품 판매가를 내리겠다는 식품회사는 아직 없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공식품 가격은 하방 경직성이 강하다.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고 한 번 올려놓으면, 인하 요인이 생기더라도 좀처럼 낮춰지지 않는다”면서 “지난해 식품 업계의 잇따른 가격 인상에 정부가 여러 번 간담회를 열어 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 교수는 “식품 기업들이 판매 가격 인상 이후 연이어 실적 개선을 발표하는 것도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라며 “이전까지는 원가 부담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최근 원재료 가격이 안정화하는 상황에서는 ‘가격 인상이 이전까지의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2010년에도 정부 요청에 가격 내린 식품업계 “상시 할인 등 검토”

정부가 사실상 식품 가격 인하를 요청한 것에 대해 식품업계는 당장 판매 가격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식품 회사 관계자는 “가격을 구성하는 요인이 원재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류비·인건비 등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원가 부담은 여전하기에 쉽사리 가격에 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시 할인행사를 큰 폭으로 하는 방법으로 상황이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010년에도 정부가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식품 업계에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고, 라면 업체 뿐만 아니라 제과·제빵 업계도 가격 인하에 동참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원재료 가격이 내렸지만, 다른 비용 때문에 원가부담은 여전하고 한 번 가격을 내리면 다시 올리는 것은 어렵다는 점도 이유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일부 원재료가 내리면 다른 원재료가 오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인건비 등 가격부담이 여전해 가격 자체를 내리긴 어렵지만, 정부의 요청에 ‘못 한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라면서 “상시적인 할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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