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대 정시 합격자 절반 배출한 대치동 A학원… '사교육 카르텔'은 어떻게 생겨났나
49.9%.
2023학년도 전국 39개 의대 정시 모집 합격자 중 서울 대치동 A재수종합학원이 배출한 합격자 비율이다. 총 정원 941명 중 470명이 A학원 출신이다. '만점'을 지향하는 A학원의 역사는 6년에 불과하다. 신생 학원인 만큼 이른바 '일타강사'의 이름값에 기대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입학시험을 치르고, 대기표를 받아가면서도 '의대에 가려면 부모찬스를 써서라도 들어가야 하는 학원'으로 성장했다. 비결은 '킬러문항' 해법이다. 입시업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문항을 두고 '사교육 카르텔'을 언급한 배경에 A학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력 검증된 학생만 받아 '만점 목표'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학원은 실력이 검증된 재수생만 받는다. 예를 들어 이과는 수능에서 국어, 수학, 영어, 과학의 등급 합이 5등급 이내여야 한다. 즉 단 한 과목에서만 2등급을 허용하는 셈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별도 입학 시험을 치러야 한다. 자사고·특목고 졸업생이나 내신 1.5등급 이내, 혹은 의약학계열이나 'SKY대학' 재학생에게는 특별히 기회를 준다.
A학원의 주요 커리큘럼은 문제풀이다. 일반 학원은 개설강좌에 따라 '문제풀이반'과 '개념이해반' 등으로 나뉘는데, 이 학원 학생들은 개념이해가 끝난 상태라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것도 만점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되는 '킬러문항'만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상위권 대학 신입생이 킬러문항 대량 생산… 정답 맞히는 '훈련'
A학원은 수능의 두 가지 맹점만 공략했다. ①5지 선다형 문제 유형과 ②문제은행식 출제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A학원이 대학 교수와 현직 교사도 못 푼다는 킬러문항을 반복적인 문제풀이로 정답을 맞히는 요령을 익힐 수 있도록 수험생들을 '훈련시켰다'고 봤다.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국어 교사 B씨는 "킬러문항이 어떤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4시간 정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들은 이 논리구조에 기반해 학생들을 훈련시킨다"고 말했다. 즉 지문의 내용을 100% 이해하고 푼다기보다, 문제가 요구하는 지문의 핵심만 파악해 정답을 맞힐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얘기다.
또 문제를 반복해 풀게 하려면 방대한 양의 킬러문항이 필요하다. 이때 A학원이 동원한 건 명문대 신입생들이다. 킬러문항에 가장 특화돼 있는 집단은 대학 교수도, 학교 교사, 학원 강사도 아니다. B씨는 "내가 킬러문항 1개를 만드는 데도 사흘은 걸리는데, 고3 1년 동안 킬러문항만 죽어라 풀었던 상위권 대학 1, 2학년들은 단기간에 꽤 그럴듯한 킬러문항들을 만들 수 있었다"며 "A학원은 이를 통해 유형별 대응 능력을 기르는 데 성공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떼돈을 벌고 있다"고 분석했다. B씨는 이어 "다만 대학 3학년만 돼도 수능 문제를 풀지도, 내지도 못한다"며 "학문적 소양은 깊어졌지만 5지 선다형 문제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교육비 영향 크지 않겠지만, 교사·학생 좌절시키는 킬러문항 퇴출 의미 있어"
하지만 이런 입시 사교육의 폐해를 학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학원은 학생들 수능 점수를 올려주고, 돈을 버는 집단"이라며 "토익 학원에 다니는 사람은 점수를 잘 받는 게 목적이지,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목적은 아닌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경쟁 위주의 입시 제도를 개편하지 않으면 '성적 향상'이라는 입시 사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교육계는 '수능의 킬러문항을 통해 공교육과 사교육이 이권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말은 의도됐다기보다는 결과론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분위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부터 수능을 점차 쉽게 출제해 궁극적으로 자격고사화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물수능'으로 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여론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2009년 이후 수능 난이도는 급상승했다. 그러면서 2010년대 등장한 것이 킬러문항이다. 서울 지역 고교 수학 교사 C씨는 "최상위권을 변별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고, 교육부와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정해주지 않았다"면서 "학교에서는 과도하게 어려운 킬러문항을 가르칠 수 없고, 자연스럽게 사교육에 의존하는 형태가 갖춰져 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계는 이번 논란이 사교육 경감에 큰 효과를 거두긴 힘들지만, '킬러문항 퇴출'이라는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봤다. B씨는 "킬러문항은 사교육비와 상관없이 교사와 학생을 좌절에 빠뜨린다"며 "교사가 못 푸는 문제를 가르쳐야 하고 푸는 것보다 찍는 게 정답률이 높은, 교육적으로 매우 비정상적인 현실을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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