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수능 출제위원이 학원에 문제집 장사...드러나는 ‘이권 카르텔’

최은경 기자 2023. 6. 21. 03: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수능 대비 학원에 ‘킬러 문제, 변형 문제 전문’이라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수능 출제 위원 출신 인사가 자신의 경력을 앞세워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입시 학원에 판 사실이 드러나는 등 사교육계에 ‘이권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뉴스1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를 했던 인사가 해당 경력을 내세우면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강남 대형학원을 포함, 전국 입시 학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20일 나타났다. 해당 인사는 수년전 방송에 출연해 수능 출제에 참여한 경험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다. 정부는 수능 출제 위원 출신들이 입시 학원들과 모의고사를 주고 받으면서 보이지 않게 연결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깨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날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연구소 대표는 8회에 걸쳐 수능 출제 위원에 참가한 경력을 홍보하면서 ‘모의고사’를 만들어 강남 대형 입시 학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이 대표는 홈페이지에 “8회에 걸쳐 수능 출제 위원으로 참가한 국내 최고 수능 전문가”라면서 “수능 국어 영역 문항을 출제하는 전체 과정과 지문 구성의 적절성, 작품 및 소재 선택, 문제 난이도 등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하고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소는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출제 시스템을 완벽 재현’하고 ‘가장 수능에 가까운 모의고사’를 개발해 수험생들에게 제공한다고 광고한다. 서울대·연고대 출신 박사뿐 아니라, EBS 교재 및 교과서 집필진, 수능 출제 위원 등 60인의 출제 위원단들이 모의고사를 개발한다고 한다. 해당 모의고사는 서울 강남, 부산, 대구 등 전국의 학원들에서 시행하고 있다. 출제위원 출신 교수가 모의고사 회사를 차리고, 다른 출제 위원 출신 교수·교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해마다 수능 출제를 하는 출제 위원과 검토 위원을 섭외해 출제진을 꾸린다. 교수와 현직 교사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약 40일간 합숙하며 문제를 출제한다. 하지만 대중에 공개되는 사람은 출제위원장과 검토위원장뿐이다. 이들은 주로 교수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출제 위원들은 출제에 참여한 사실을 출제를 끝난 다음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다. 이를 어기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고지 받는다.

평가원 관계자는 “A연구소 대표가 출제 위원 경력을 밝히는 것은 서약서 위반이지만, 법적 처벌 규정을 강화한 2016년 이전에 출제에 참여했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능 출제 위원들이 강남 입시 학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현직 교사들이 수능 출제나 검토 위원으로 참여한 뒤 강남 입시 학원의 강사로 이직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수능 출제진에 들어간 사실을 ‘강사 약력’에 버젓이 써놓기도 해 과거 논란이 됐다. ‘출제 경력을 밝히지 않겠다’고 서약하고도 이를 어긴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교육계에선 “수능 출제 경력을 상업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있었다.

심지어 2016년에는 수능 모의고사 검토 위원에 참여한 현직 고교 교사가 유명 입시학원 국어 강사에게 돈을 받고 모의고사 문제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수능 출제진과 유명 입시 강사의 ‘문제 거래’가 사실로 드러난 사건이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 업계들이 출제위원으로 들어간 사람을 모니터링하고 영입을 늘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학원들은 출제위원 출신 교수를 자문으로 모시고, 해당 교수의 제자들을 학원으로 영입하는 네트워크들도 있다”고 말했다.

학원들이 고교 교육 과정만으로 풀 수 없는 수능 ‘킬러 문항’으로 모의고사를 만들어 돈벌이를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강남의 B입시학원은 강사나 대학원생 등을 통해 ‘킬러문항’을 수학 1문제당 75만~200만원까지 주고 사들인다. 이런 모의고사 교재들을 수강생들에게만 수강료와 별개로 월 최대 100만원까지 주고 판매한다.

학원가에선 B학원을 포함한 대형 입시 학원들이 수능 출제진을 연구소로 영입해 문제 개발을 시킨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에 대해 B학원은 “사실 무근”이라면서 “(모의고사 개발) 연구소와 강사 모두 출제위원 쓰지 않는다. 연구소 인력은 학원 강사들로 채워져 있고, 문제는 대부분 대학생들이 만든다”고 말했다. C학원도 “일부 강사들이 (다른 강남 학원들처럼) 출제위원 경력이 있긴 하지만, 출제진이라서 영입한 게 아니라 강의를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가원이 킬러문제를 배제하는 동시에 문제에 대한 다양한 분석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컨대, 평가원은 수능 문제의 ‘정답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