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19] ‘말 궁둥이에 붙은 파리’를 꿈꾸는 사람들
영채신이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 나쁜 평판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는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오. 일단 발을 한번 잘못 디디면 그야말로 몸을 망치고 창피를 사게 될 뿐이오.” 처녀가 말했다. “한밤중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걸요.” 영채신은 다시 꾸짖었다. 처녀가 그래도 머뭇거리자 영채신은 호통을 쳤다. “냉큼 돌아가지 못할까! 그러지 않으면 남쪽 방의 서생을 불러서 알릴 테다!” 처녀는 겁을 내면서 그제야 물러났다.
-포송령 ‘천녀유혼’ 중에서
주한 중국 대사는 야당 대표를 만찬에 초청하고, ‘한국의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띄워주며 많이 가르쳐달라고 했다. 대표가 한중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양국의 신뢰와 존중을 이야기하는 동안 생중계 중이던 민주당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대통령 포스, 진짜 대통령, 실질적 대통령’이라는 지지자들의 감탄사가 올라왔다.
외교관은 공식적 스파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국 정치인과 밥 먹고 농담하는 것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중국 대사는 ‘한중 문제의 책임은 중국에 없다, 미국에 베팅하는 건 잘못이다, 후회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200자 원고지 16장 분량을 14분 동안 읽었다. 어른이 아이를 혼내듯, 양복 깃에 태극기 배지를 단 야당 대표를 옆에 앉혀놓고 대한민국의 외교 현안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홍콩 배우 왕조현과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천녀유혼’은 청나라 작가 포송령의 소설이 원작이다. 영채신은 우연히 묵게 된 곳에서 만난 천하절색 섭소천의 유혹을 단호히 내친다. 그녀가 내민 황금도 ‘도리에 어긋난 재물은 주머니만 더럽힌다’며 내던진다. 젊은 남자들을 홀려 죽이던 처녀 귀신 섭소천은 올곧은 마음을 지킨 영채신에게 감동, 그를 살리고 성공과 행복도 선물한다.
부적절한 제안과 불의한 재물을 물리치지 못하면 신세를 망치지만, 정치 세계에는 수치심도 없고 책임도 없다. ‘대단한 정치인, 진짜 대통령’이란 찬사를 들었지만 당대표는 한중 외교의 골만 깊이 팠다. 그 와중에 야당 의원들은 중국 초청으로 공짜 여행을 했다. 일본 대사관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중국이라는 말 궁둥이에 붙어 만 리를 가는 파리’가 되자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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