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포플러 나무는 어디로 갔나…플라타너스 너는?
포플러 나무는 한눈팔지 않고 맹렬하게 가지들을 곤두세운다. 가늘고 긴 잎자루까지 하늘에 닿을 듯 쭉쭉 내뻗는다. 바람이 분다. 가지마다 틔운 역삼각형 잎들이 이리저리 부딪혀 스르륵스르륵. 시원함은 배가 된다.
열 그루가 여섯 그루로, 그리고 마지막 남은 네 그루
2023년 6월7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중앙잔디광장. 1985년 충북 청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군사관학교가 연병장으로 쓰던 곳이다. 이곳 동쪽으로 키는 25m가량에 가슴높이 둘레 1.8~2.2m인 거목 포플러 네 그루가 어색하게 서 있다. 자세히 보니 날카로워야 할 ‘펜촉’ 같은 머리 쪽이 뭉툭하게 잘려나갔다.
“모양이 좀 이상하죠? 원래는 키가 33m 정도 됐어요. 올 1월에 공원관리소에서 윗부분을 25%가량 잘라냈어요. 태풍 불면 넘어질지 모른다고 미리 대비한다고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쩌겠어요.” 동작구민 김미라 ‘보초맘’ 대표가 한 말이다.
보초맘은 주민 20여 명의 모임이다. 2015년 ‘자녀들이 보라매초교에 다니는 엄마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함께 공원을 산책했던 것이, 공원 내 동식물의 생태를 촬영·기록하는 모임으로, 또 ‘공원 관리’를 감시하는 모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네 그루만 이가 빠진 듯 엉성하게 선 모습도 어색했다. 확인해보니 2017년 초까지만 해도 열 그루가 길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2017년 2월 보라매공원 아래 신림선 경전철 공사가 시작됐다. 일부 나무가 기우는 등 생육상태가 나빠졌다. 공원관리소는 이때부터 여섯 그루를 베어냈다. 맨눈 조사에 의지해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항소도 없이 집행됐다.
“멀쩡한 나무들이 공사가 시작되고 건강이 악화한 건데, 공원 쪽은 ‘신림선(공사)과는 관계가 없다’ ‘포플러는 원래 수명이 짧아 죽을 때가 다 돼서 죽어갔다’고만 하더라고요. 2021년 5월 저희가 관심 가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네 그루는 잘려나갔어요. 나머지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생육상태를 확인해달라’고 공식 민원을 냈어요. 그런데 민원 제출 이틀 뒤 두 그루를 잘라버리더라고요. 일방적이었죠. 항의했어요. 그런데 ‘위험목이라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이 포플러가 언제 심어져서 몇 살이고, 뭐가 어떻게 위험한지는 설명 못하더라고요.”(김미라 대표)
자칫 남은 네 그루까지 이유도 모른 채 잘려나갈 상황이었다. 보초맘 회원들은 급하게 성금을 모아, 아보리스트(수목전문가)에게 생육상태 점검을 의뢰했다. 모두 건강한 상태였다. 이렇게 되자 공원 쪽도 함부로 포플러에 손대지 못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수목 진단 전문업체가 ‘네 그루 중 한 그루에 큰 동공(빈 곳)이 생겼다’ 등의 결과를 내놓자 공원 쪽은 포플러 네 그루의 윗부분 25% 정도를 댕강 잘랐다.
머리 부분은 치유가 잘 안되니 손대지 말라
이런 강전정(강한 가지치기, Topping)이 안전하다는 믿음은 ‘과학’보다는 ‘미신’에 가깝다. 국제수목학회(ISA) 공인 수목전문가인 이재현 아보리스트는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동공이 생겼다고 다 위험목이 되진 않아요. 겉에 분포한 형성층 조직이 충분히 버텨줄 때가 많아요. 수백살 된 나무 중에 동공이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국제수목학회에선 머리 부분은 치유가 잘 안되기 때문에 손대지 말라고 해요. 곰팡이와 세균도 침입하기 쉬워 나무가 더 약해져요. 또 나무가 머리 부분을 복구하려 잠아(숨은눈)를 틔우면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잠아에서 자란 가지는 접합면이 약해 잘 부러지니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위험해요.”
포플러는 어떤 한 종이 아닌 포플러속(populus)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북미에서 온 미루나무(미국 버드나무라는 뜻의 ‘미류(美柳)나무’가 바뀐 말)와 유럽에서 건너온 ‘양버들’을 가리킨다. 보라매공원 포플러는 양버들이다. 평균수명은 70~100년 정도로 사람과 비슷하다. 공원관리소는 공군사관학교 때 심었다는 점으로 미뤄 ‘보라매 포플러’ 네 그루가 50살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생육조건에 따라 포플러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한다. 미국 뉴욕주 동남부에 있는 뉴버그의 ‘밤빌 나무’(Balmville Tree·미루나무)가 그 증거다. 중심부 조직 검사로 1699년부터 그 자리를 지켰던 사실이 드러났다. 키 33.5m, 가슴높이 둘레 7.6m이던 밤빌 나무도 ‘보라매 포플러’처럼 위험목으로 지정돼 베어질 위기에 처했다.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2000년 뉴욕주는 밤빌 나무 주변 지역을 ‘주립공원’과 ‘국가사적지’로 지정해, 특별관리했다. 밤빌 나무 주립공원은 ‘가장 작은 주립공원’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인 큰 나무들은 가장 오래된 구조물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 316년, 천수를 누린 뒤 2015년 8월5일 수명을 다한 밤빌 나무 앞에서 열린 송별식에서 뉴욕주 관계짜가 읊은 추도사의 한 구절이다.
포플러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나무다. 이름도 라틴어 민중(Populus)에서 왔다. 가지를 옆으로 잘 뻗지 않아 햇볕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다른 나무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이 나무의 특징이다. 어떤 나무보다 애벌레도 많이 키워낸다. “나비·나방 애벌레가 포플러에 기대 살면서 작은 생태계가 형성돼요. 애벌레가 갉아먹으면서 잎이 으깨지잖아요. 그때 특유한 향을 발산하고, 그러면 더 많은 애벌레와 곤충이 모여들어요. 이런 애벌레를 새들이 먹어요. 또 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으면 새는 안정감을 느끼고 둥지도 많이 짓고요. 다 자란 곤충이 식물의 수분 매개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허태임 식물분류학자) 살펴보니 이날도 포플러 주변에 까치 소리가 들렸다. 흰색 나비도 참 많았다. 나풀나풀 풀밭을 노닐었다.
일부러 베고 벤 다음에 심지 않으면서 기피 수종으로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나무는 그냥 당연히 있는 것으로 간주할 때가 많죠. 그래서 불편함이 생기면 소수의 사람이 목소리를 내서 민원을 제기하는 그런 사회에 사는 것 같아요. 공무원은 관리가 수월하고 민원 유발이 덜한 방향으로 나무를 관리하고, 나무의사들도 발주처 요구를 맞추는 게 현장 분위기예요. 나무의 탄소 흡수, 폭염 방지, 생물다양성을 위한 서식지 제공, 정서적 기능 등은 간과하죠.”
포플러는 우리나라에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이 도입한 뒤 폭넓게 심어졌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새로 닦은 큰길가에 포플러가 흔하게 서 있어 황량감을 씻어줬다. “언제나 말이 없던 너는 키 작은 나를 보며 ”(이예린, <포플러 나무 아래>)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 서서히 사라졌다. 40만㎡ 서울 서남권 최대 규모 공원인 보라매공원에도 포플러는 이 네 그루가 전부다.
“포플러·버드나무 등 가로수의 꽃가루가 날려 천식·콧물·감기·안질·피부염 등 각종 꽃가루 공해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부쩍 늘고 있다.”(<경향신문> 1979년 5월9일치)
“한마디로 누명이죠. 봄철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가 일어난다고 큰 논란이 된 게 1980년대쯤인데, 그때 포플러가 범인으로 지목됐죠. 하얀 솜털 같은 게 몰려 있으니 제일 먼저 의심받은 거죠. 그런데 하얀 솜털로 싸인 부분은 꽃가루가 아닌 씨앗이에요. 알레르기와 상관없어요. 더군다나 ‘외래종 말고 자생종 중심으로 바꾸자’는 얘기까지 통용됐어요. 일부러 베고, 길을 넓힌다고 또 벤 다음에 다시 심지 않고, 그러면서 기피 수종이 돼서 사라졌죠.”(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보라매 공원관리소는 2023년 1월 또 다른 ‘외래종’ 플라타너스 수십 그루에 대해서도 모조리 강전정을 실시했다. 6월5일 김미라 대표와 함께 공원을 둘러보니 특유의 널따란 잎이 무성하게 우거져야 할 플라타너스들이 젓가락처럼 서 있었다. 그늘 한 조각 찾기 어려웠다. 공원관리소 담당자는 “플라타너스가 너무 빽빽하게 심겨 있어 생육여건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너무 크게 자라는 포플러나 플라타너스 같은 수종은 잘 안 심는다”고 덧붙였다.
이재현 아보리스트는 이렇게 반박했다. “잔가지가 많을 때 적절히 잘라주면 환기나 생육여건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아무리 플라타너스가 가지치기를 잘 버티는 수종이라 해도 강전정은 버틸 수 없어요. 외국에선 여전히 포플러와 플라타너스를 많이 심어요. 나무는 죄가 없죠.” 국제수목학회는 강전정이 △나무에 스트레스를 주고 △부패로 이어지며 △잘린 부분의 연약한 새 가지가 부러질 수 있어 위험하고 △나무를 추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한 공원 담당자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무가 쓰러져서 인명사고가 나는 건 부담이 너무 큽니다. 따로 매뉴얼이나 계량화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담당자들은 ‘나무가 너무 크면 키를 줄여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 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기적인 강전정과 벌목이 ‘룰’이 돼버리죠.”
22m 넘는 튤립나무를 지켜라
‘보초맘’ 김영숙씨는 보라매공원 옆 아파트에서 7년간 살다가 2022년 10월 제주도로 이주했다. “전기톱 모터 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본 것만 100여 그루가 잘려나갔어요. 멀쩡한 나무를 왜 자르냐고 항의하면, ‘위험해서 그런다’고 해요. 큰 나무에 있던 까치둥지가 떨어져서 새끼들이 죽기도 했어요. 나무가 우거진 게 좋아서 여기에 살았던 건데…. 항의하면 ‘(주민들은) 잘 몰라서 그런다’고 하고…. 아름다움을 없애는 일만 하더라고요. 다른 이유도 있지만 공원관리도 제가 떠난 이유 중 하나예요.” ‘보초맘’ 이진아씨도 “나무는 그냥 쉽게 베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세월을 생각하면 함부로 할 수 없는데도…”라고 말했다.
김미라 대표는 “어떨 때는 (공원관리소에) 예산이 없는 게 낫겠더라고요. 예산이 있으니까 나무를 자꾸 베고 자르고, 개구리가 서식하는 공원 연못의 풀도 마구 베고…. 지금도 예초기 소리 들리시잖아요. ‘윙’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라고 말했다. “나무를 아끼는 사람들도 속으로만 아끼지 말고 ‘왜 그 사람들 목소리만 크냐, 우리 목소리도 내자, 가지치기하지 말자, 지켜보겠다’고 민원을 적극적으로 넣어야 할 거 같아요.”
요즘 보초맘은 보라매공원 동북쪽에 2025년 생길 예정인 보라매병원 호흡기센터 건립으로 베어질 나무들에 집중하고 있다. 김미라 대표 노트에는 이 공간에 있는 아름드리나무의 수종·키·둘레 등의 기록과 그간 서울시 공무원과 주고받은 민원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중 가슴높이 둘레가 4m에 이르고 높이도 22m가 넘는 튤립나무 두 그루도 있다. 그가 직접 줄자 등으로 측정한 데이터다.
한국 임학계 거목인 임경빈(2005년 작고) 전 서울대 교수는 포플러 나무에 대해 이렇게 썼다.
“포플러는 깨끗한 시인이다. 푸른 하늘에 시를 쓴다. (…) 솔솔 부는 바람에 시를 새겼다. 바람은 그들의 화려한 시집이다. (…) 포플러는 높고 맑은 품위로 산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이 나무를 좋아한다. (…) 이제 포플러는 우리 나무가 됐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살아오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나무백과> 제3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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