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이 무서운 세상…'묻지마 범죄'를 묻는다

조소현 2023. 6.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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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은 무조건 피하고 봐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해요. 이런 상황이 너무 싫어요."

그러면서 "만약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 성격장애라면, 한국 내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큼 있는지 등을 분석한 기초적인 자료가 있어야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 교육기관이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관련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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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묻지마 범죄 증가 추세
대부분 사회적 소외·경제적 빈곤층
전문가들 "범행 원인 물어 대책 세워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5월26일 20대 취업준비생 정유정은 과외 교사를 찾는 아르바이트 앱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해 또래여성을 살해했다. /뉴시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낯선 사람은 무조건 피하고 봐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해요. 이런 상황이 너무 싫어요."

지난 5월26일 20대 취업준비생 정유정은 과외 교사를 찾는 아르바이트 앱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해 또래여성을 살해했다.

지난 4월27일 경기 고양시에서는 50대 남성 A씨가 출소한 지 사흘 만에 처음 본 시민을 흉기를 찌르고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 한 범행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범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30대 직장인 조모 씨는 "강남역 사건 이후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한다"며 "모르는 사람이랑 조금만 거리가 좁혀져도 피하게 된다. 길에서 시비가 붙을 것 같으면 무조건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원생 최모 씨도 "뉴스 등으로 범죄 사건을 접하다 보니 안 좋은 상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자취하는데, 혼자 잘 때 누가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인적 드문 밤길을 걸어갈 땐 바짝 긴장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 까닭으로 전문가들은 사회적 불평등을 주로 꼽는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빈부격차, 상대적 박탈감 등 사회문제가 심화될수록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로 묻지마 범죄가 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관련 통계가 없는 탓이다.

지난해 1월 경찰청은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정의하고 통계를 작성해 범죄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통계를 작성하려면 정의나 분류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데, (묻지마 범죄는) 통계를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월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라고 정의하고 통계를 작성해 범죄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더팩트DB

묻지마 범죄라는 명칭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묻지마'가 아니라 '물어야' 정확한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라는 정의 자체가 문제"라며 "'묻지마'라고 쉽게 정의를 내리는 것은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동기를 분석하고 동기가 동기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묻지마'라는 범죄의 유형이 없어져야 한다"며 "모든 범죄에는 원인이 있다. '묻지마 범죄'라고 이름이 붙여지는 사건들은 수사기관이 범죄의 원인을 못 밝힌 것 뿐이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 성격장애라면, 한국 내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큼 있는지 등을 분석한 기초적인 자료가 있어야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 교육기관이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관련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묻지마 범죄를 범죄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해자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소외됐거나 경제적 빈곤 상태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 2014년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 대부분은 무직으로 월평균 소득이 없거나 100만원 미만이었다.

이윤호 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은둔형 외톨이나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 등을 경험하고 사회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이 소외감, 분노를 느끼지 않도록 사회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다. 건강의료와 보건복지 등이 함께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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