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원, 82년 만에 결국 폐원···“독단적인 이사회 결정 철회하라”

윤기은 기자 2023. 6. 2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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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만장일치로 가결…폐원일은 미정
노동자 반발…환자·주민들은 의료공백 우려
서울백병원 백낙헌 이사가 20일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팀에서 결정한 ‘서울병원 폐원안’을 의결할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기자

서울 도심에서 핵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8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울백병원 법인 인제학원 이사회는 20일 만장일치로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가결했다고 이날 밝혔다. 병원 측은 1745억원의 적자 발생, ‘의료관련 사업 추진 불가’라는 외부전문기관 경영컨설팅 결과, 도심 공동화 현상과 주변 대형병원의 출현으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 등을 폐원 이유로 들었다. 폐원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인제학원 관계자는 “서울백병원 전체 교직원들의 고용유지를 위한 전보 발령, 외래 및 입원환자 안내, 진료 관련 서류 발급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며 “서울백병원 부지와 건물에 대해서는 새 병원 건립, 미래혁신데이타센터 운영, 수익사업, 매각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노동자들은 이날 오전 중구 병원 본관 앞에서 폐원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원무부 창구 업무가 끝난 오후 5시부터는 직원 약 150명(노조 측 추산)이 1층 로비에 집결해 결과를 기다렸다. 병원 노동자들의 손에는 ‘서울백병원 폐원결정 이사회 안건 철회하라’ ‘서울백병원 직원들 무시하는 백중앙의료원 규탄한다’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앞줄에 앉아있던 병원 노동자는 엘리베이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사회 참석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결과가 발표되자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무척 아쉽고 속상하다”며 “백병원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주인이 누군지 우린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낙심하는 게 아니라 (노사 간) 협의체로 투쟁할 것이다. 오늘이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병원 교직원 393명을 다른 지역 백병원으로 고용승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당사자의 조건을 반영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안건 철회를 요구해왔다.

병원 환자와 지역 주민들도 “의료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의료노조가 환자와 주민, 병원 교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백병원 폐원 철회 서명운동’에는 이날까지 7600여명이 서명했다.

병원 재단 측이 폐원하고 남은 건물과 부지를 상업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명동 번화가 바로 앞에 위치한 이 부지의 부동산 가치는 2000억~3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병원은 지난해 12월 경영컨설팅업체로부터 “해당 입지에서 더 이상의 의료 관련 사업은 모두 추진이 불가하며, 의료 기관 폐업 후 타 용도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자문 결과를 받았다.

폐원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이날 서울백병원 부지를 의료시설로만 쓸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장 권한으로 중구청에 도시계획시설 결정안을 제출하고, 열람공고 등 주민의견 청취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밟아 결정이 내려진다.

인제학원 이사회가 서울백병원 폐원을 결정한 데는 지난해 교육부가 사립대학 재단이 보유한 유휴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사립대 법원이 소유한 종합병원 부지는 다른 유휴재산과 동일하게 임의로 매각하거나 용도를 전환할 수 없도록 교육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인술제세(仁術濟世·인술로 세상을 구한다)’, ‘인덕제세(仁德濟世·어짊과 덕으로 세상을 구한다)’를 설립이념으로 1941년 개원한 서울백병원은 서울 도심에서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신경외과 등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중구에 남은 유일한 종합병원으로, 지난 3년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 “서울백병원 문 닫으면 어디로”…도심 의료 공백에 지역민들 ‘안절부절’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191652001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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