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사람들, 묵직한 위로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6. 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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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대상 작가들 신간

이서수 소설가는 '미조의 시대'로 재작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삶의 고통을 견뎌낸 자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하고도 따스한 위로"라는 평을 받았다. 김멜라 소설가의 '제 꿈 꾸세요'는 작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은 단편으로,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맑고 밝은 상상력으로 갈무리해 놀라움을 자아낸다"는 격찬을 받았다.

현재 한국 문학에서 가장 뜨거운 두 작가의 신작이 서점가를 찾았다.

이서수의 첫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은행나무 펴냄)은 표류하는 청춘에 관한 주제의식이 깊어지는 작품이다. 이 시대 청춘의 색깔은 선명한 푸른빛이 아니라 무른 잿빛이다.

표제작 '젊은 근희의 행진'은 우중충한 세대 속의 한 자매 간 갈등을 그렸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여기는 동생 근희와 그를 바라보는 언니 문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근희는 북튜버로 돈을 벌려고 하는데, 문제는 책 소개 영상에서 가슴이 깊이 파인 옷을 입고 구독자 앞에 나선다는 점이다. 문희는 '관종'이라고 지적하지만 근희는 '관종' 문화를 배태한 세상을 당연시한다. 근희는 언니에게 쓴다. "책도 아름답지만 내 몸도 아름다워. 문장도 아름답지만 내 가슴도 아름다워. 언니는 왜 몸을 강탈의 대상으로만 봐?"

근희는 세상을 이렇게 정의 내린다.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고. 근희는 인스타그램 사기를 당한다. 문희는 동생에게 급기야 '관종 아메바'라고 손가락질하고 근희에게 '꼰대'라고 지적받는다. 그러나 근희가 보낸 장문의 편지를 읽고 문희는 동생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결국 이렇게 쓴다. "나의 동생,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단칸방 신세를 면하기 위해선 이렇게 해서라도 '많관부'를 구조신호처럼 적어야 하는 시대는 신산하다. 근희의 행진은 끝까지 씩씩할 수 있을까.

다른 단편 '발없는 새 떨어뜨리기'는 좀 더 직접적인 세대론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1958년 마오쩌둥의 농촌 순방 당시의 일화로 돌아간다. 당시 마오쩌둥은 귀중한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는 '해로운 새'로 규정했다. 참새 소탕 작전은 끔찍했다. 참새가 어디에도 절대로 앉지 못하게 내쫓아 결국 죽을 때까지 공중을 날도록 하는 것. 중고거래로 알게 돼 친해져 단톡방에서 알게 된 사영, 가진, 수미는 어디에도 내려앉아 쉴 수가 없는 자신들을 '마오쩌둥의 참새'에 비유한다.

병원 응급실 간호사 사영, 프리랜서 작가이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 마흔 넘도록 배우를 꿈꾸는 수미의 세대 정의란 이런 것이다. 안 힘든 일을 찾아보는 일조차 너무 힘들어 포기하게 되는 세대. 군산의 3000만원짜리 1층 아파트를 욕망하면서도 3000원짜리 메모지는 쉽게 사지 못한다. 작가의 정의에 따르면 꿈과 돈은 단단하게 연결돼 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없나. 꿈을 완전히 이루거나, 꿈을 버려야 돈을 벌 수 있다."

김멜라 작가의 장편 '없는 층의 하이쎈스'(창비 펴냄)는 분명히 있지만 없는, 정확히는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제대로 된 주소도 없는 상가, 명필교습소가 위치한 201호와 202호에서 할머니 사귀자와 손녀 아세로라가 살아간다. 부모의 파산으로 사귀자에게 맡겨진 아세로라는 할머니가 간첩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낡은 건물에서 발견된 노란색 종이에 분명히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간첩 사씨가 소시지 부침으로 하숙생을 꾀어냈다.' 사귀자는 과거 하숙집을 운영했고 특히 소시지 부침이 맛나 하숙생들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녀는 군사독재 시절 '하이쎈스'라는 별명을 가진 북한 간첩으로 오해받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평생을 숨어지냈다. 커튼은 그녀에게 필수품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사귀자는 간첩이 아니었다. 사귀자가 글씨를 너무 잘 쓴다면서 유독 그녀를 따랐던 순영이란 학생이 있었다. 사귀자를 명필이라고 추켜세우던 순영은 사귀자에게 글씨를 똑같이 써달라고 부탁했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사귀자는 한 글자씩 써내려갔다. 보안당국에 따르면 사귀자가 쓴 종이엔 '김일성 만세'라고 써 있었다.

훗날 밝혀지기로, 사귀자가 희뿌연 눈을 비비고 확인한 글자는 그런 위험한 글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였다. 소설은 블랙코미디를 연상할 만큼 특유의 발랄하고 톡톡 튀는 감성을 유지한다. 두 사람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매번 자취를 감추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후기에 쓴다.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저를 움직여 글을 쓰게 합니다. 그렇게 있음과 없음을 넘나드는 질서와 힘에 의지해 하이센스, 높은 감각을 느껴봅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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