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몰랐다고 끝? ‘대책 없는’ 전세 대책[취재 후]

2023. 6. 20. 07: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말 한마디였습니다. “전세 제도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라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전세 사는 입장에서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세가 없어지면 어떤 형태로 계약하라는 것인지’, ‘당장 주거비로 한 달에 얼마를 더 써야 하는지’ 당최 가늠이 되질 않았습니다. 발언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장관이 발언을 뒤집었습니다.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라나요.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도 실제 시장에는 아무런 충격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관은 “아니”라는데 현장에선 “맞는 것 같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김찬호 기자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임대인이나 임차인에게 전세계약 추천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나라에서 전셋값을 결정해줬는데 양쪽에서 나보고 난리”라고 했습니다. 진의를 따라가 보니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 보증금반환보증이 나왔습니다. 이른바 ‘126% 룰’입니다. 쉽게 말해 공시가의 126% 이상 보증금을 받으면 반환보증에 가입 못 한다는 규칙입니다. 전세사기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없는 집은 ‘문제 있는 집’으로 찍힙니다. 그러니 126% 룰은 정부가 정해준 각 집의 전셋값 상단이 됩니다. 이를 보니 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전세 시장을 소멸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까지 고민하지는 않은 게 틀림없습니다.

전세 시장을 누르자 반전세(보증금 낀 월세), 월세의 문제가 튀어나왔습니다. 허그는 “예측하지 못했다. 전세보증금까지만 우리 업무”라고 합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126% 룰로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이 생기자 이제 와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까지 검토한다고 합니다.

전세보증금은 누군가에겐 전 재산입니다. ‘말 한마디 던져보고 아니면 말고’라거나 ‘이런 부작용이 생길 줄은 몰랐네’라고 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먼지가 뿌옇게 올라온다면 잠시 가라앉길 기다린 뒤 움직이는 것도 전략일 수 있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