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물가 안정' 내세워 압박하는 정부…유독 식품업계에 엄격

이상학 기자 2023. 6. 2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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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밀 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지난해 라면 업체들이 국제 밀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라면값을 인상했으니 이번엔 내리는 게 맞아 보인다.

라면 제조 기업들이 직접 밀을 조달해 밀가루를 만들지 않는다.

밀 가격이 내려간 건 라면 업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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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상 최고로 치솟았던 국제 밀 가격이 최근 큰 폭 하락해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 1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노인이 라면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있다. 2023.6.19/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이상학 기자 = "기업들이 밀 가격을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라면값에 대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다. 추 부총리의 말 한마디에 라면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현실적으론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부의 메시지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어서다.

추 부총리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밀 가격은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라면 업체들이 국제 밀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라면값을 인상했으니 이번엔 내리는 게 맞아 보인다.

다만 여기엔 오류가 있다. 라면 제조 기업들이 직접 밀을 조달해 밀가루를 만들지 않는다. 대부분 대한제분과 삼양사 등 업체들로부터 밀가루를 납품받아 사용한다. 밀 가격이 내려간 건 라면 업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확히는 밀가루 납품 단가가 떨어져야 라면 업체의 생산 단가가 낮아질 수 있다.

통상적으로 라면 업체들은 연간 단위로 밀가루 공급 계약을 맺는다. 이미 높아진 단가로 계약을 맺은 물량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판매가를 낮추는 건 기업에 손해를 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추 부총리의 발언에 라면 업계는 가격 인하 검토에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가격을 내렸던 2010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 당시 가격 인하엔 원부자재는 물론 물류비도 줄일 수 있었다.

추 부총리의 발언 중에서 시민단체에 압박을 가하라는 듯한 말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마치 라면 제조사들이 잘못했으니 시민단체가 바로잡아달라는 취지로 들리기 때문이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감내한 가격 인상 요인은 언젠가 소비자에게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특히 식품업체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여러 업계에서 지난해부터 가격 인상이 이어졌지만 정부는 식품업체들을 불러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유독 식품업체 옥죄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식품업체들은 'K-푸드'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며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K-라면' 돌풍은 단연 돋보인다. 'K-컬처'의 완성은 K-푸드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성장세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 꺾이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shakiro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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