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엔저 동시에 덮친 전자·자동차,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
美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과 BOJ 통화정책 차이 탓
"800원대 안착 가능성 낮아…연말 강세 전환 전망"
수출 경쟁력 우려 부각됐지만, "엔저 수출 영향 단기적"
19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원·엔 재정환율인 100엔당 원화는 오전 8시13분 기준 895.95원을 기록했다. 2015년 6월말 이후 처음으로 800원대로 떨어지며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엔 환율도 141엔대로 작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엔저 흐름은 세게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펼치는데 반해, 일본은행(BOJ)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어서다. 일본은행은 6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단기금리를 마이너스(-)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지하는 수익률곡선관리 정책(YCC)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원화의 상대적 강세도 원·엔 환율에 하락 압력을 더하고 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45원 이상 하락해 1200원대에 안착하고 있다. 이는 연준의 금리 동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한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부각되면서 위험통화로 분류되는 원화 수요가 높아진 영향이다. 또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하반기부터 개선될 것이란 전망에 국내 증권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된 영향도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이같은 엔화 약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연말에는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일본 증권시장이 회복되고 있고, 경기도 좋아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내년까지 원화적인 기조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늦어도 올 3분기말에서 4분기초에는 통화정책에 방향 전환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일본의 주요 경제지표는 일본경기가 반등하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7%를 기록, 속보치(0.4%)에서 상향조정됐다. 기업 설비투자(1.4%)가 속보치(0.9%)보다 확대되는 등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증권시장도 호황이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힘입어 33년 만에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도 석 달째 이어졌다. 일본의 4월 경상수지는 1조8951억엔(약 17조5500억원) 흑자로 전년동월대비 76.3% 급증했다. 특히 여행수지 흑자가 2941억엔(약 2조7230억원)을 기록, 지난해보다 11배 증가했다. 최근 엔저 흐름이 이어졌던 것을 고려하면 여행수지 흑자폭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본의 팬데믹 이전 대비 외국인 관광객 회복률은 3월 기준 66%로 우리나라보다 14%포인트 가량 높다.
엔저 여파로 정부와 업계의 수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일 양국 산업의 경쟁 구도가 약화하며 엔저와 우리 수출의 상관관계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석유제품 △전기·전자제품 △자동차·부품 등 업종은 여전히 양국 기업 간 경합성이 높아 엔저가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원화 강세·엔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경합 업종의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가 크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 정세를 고려했을 때 하반기엔 다시 원화와 엔화가치가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엔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무역협회 ‘최근 엔화 약세의 우리 수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세계시장 수출 경합도지수는 2011년 0.475에서 2015년 0.487까지 올랐으나 2021년 0.458로 크게 내렸다. 한국과 일본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이 2015년을 기점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수출경합도지수는 0~1 사이에서 두 국가 간 수출구조의 유사 정도를 측정해 경쟁 가능성을 나타내는 수치다.
조의윤 무협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한일 수출구조가 차별화하며 2010년대 중반 이후 경합이 약화하고 있어 엔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장기적으로는 줄어드는 추세”라면서도 “다만 미국 시장을 겨냥한 화학공업 제품이나 철강·비철금속제품, 중국 시장을 겨냥한 기계류나 전기·전자제품 등 일본과 비교해 수출 경합이 심화한 품목에 대해 세심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또 “주요 기관이 엔화 가치 절상을 전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엔저가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길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원·엔이 동반 강세를 보이며 엔저로 인한 우리 수출 경쟁력 저하현상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하상렬 (lowhig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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