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다리 내주고 목숨은 살리자” 눈각다귀의 혹한 생존전략
기온 떨어지면 다리 스스로 잘라
얼음이 몸까지 퍼지지 않게 막아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차라리 눈 내리는 겨울이 낫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몸 일부를 내놓지는 않는다고 보면 폭염이 살기에 더 쉽다.
미국 워싱턴대 생물리학과의 존 튜틸(John Tuthill) 교수 연구진은 최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눈각다귀(Chinea)가 눈 위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스스로 다리를 잘라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공포 영화처럼 자연에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팔다리를 서슴지 않고 희생하는 동물들이 있다. 추위를 이기려고 다리를 잘라내는 곤충이 있는가 하면, 기생충이 퍼지지 않도록 목을 스스로 치는 달팽이도 있다. 극한의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몸통 보호하려고 스스로 다리 잘라내
눈각다귀는 모기처럼 생긴 각다귀의 일종이지만 날개가 퇴화됐다. 성충이 한겨울에 짝짓기를 해 눈 위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 때문에 눈파리(snow fly)라고도 불린다. 튜틸 교수 연구진은 북미대륙에 사는 눈각다귀는 기온이 섭씨 영하 7도 이하로 떨어지고 다리에 얼음 결정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다리를 떼 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미국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 버몬트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유콘주의 산속에서 눈밭에서 눈각다귀 4종을 채집했다. 실험실에서 눈각다귀를 차가운 접시 위에 올려놓고 온도를 영하 7도까지 낮췄다. 다리가 접시에 얼어붙자, 눈각다귀의 다리는 엉덩이 부분의 대퇴골과 고관절에서 꺾였다.
열화상 카메라는 눈각다귀의 다리가 얼기 시작하는 순간 다리가 절단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얼음 결정이 몸 전체에 퍼져 목숨을 잃는 일을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온도를 낮추자 눈각다귀는 6마리 중 4마리가 디리를 잘라냈지만, 친척인 일반 각다귀는 13마리 모두 다리가 멀쩡했다. 천적이 공격할 때처럼 한쪽 다리를 집게로 잡고 당기자 각다귀는 13마리 중 7마리가 다리를 잘라냈다. 반면 눈각다귀는 8마리 모두 다리가 멀쩡했다. 눈각다귀가 다리를 잘라낸 것은 추위를 이기려고 한 행동이라는 말이다.
자연에서 채집한 눈각다귀는 20%가 다리 일부를 잃은 상태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눈각다귀는 영하 10도에서도 여섯 개 다리 중 절반만 갖고도 눈 위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관찰됐다. 처절한 적응력 덕분에 눈각다귀는 12~2월에 짝짓기할 수 있다.
튜틸 교수는 눈각다귀가 체온 상승을 감지해 다리를 잘라내는 시점을 알아낸다고 추정했다. 물이 열에너지를 받으면 기체가 되고, 반대로 열에너지를 방출하면 언다. 마찬가지로 눈각다귀 다리에서 얼음 결정이 형성되면 열에너지가 방출돼 온도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눈각다귀 다리에 얼음이 생기기 직전 체온이 급상승했다.
이처럼 극강의 적응력을 가진 눈각다귀도 지구 온난화로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힘들게 눈에 적응했는데 온난화로 북미대륙의 산악지대에 겨울철 적설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겨울에 대비해 아예 온몸에 두터운 외투를 붙였는데, 기온이 올라가면서 오히려 더위로 살기 힘들어진 것과 같다.
◇기생충 없애려 스스로 목 치는 달팽이
동물이 자신의 몸 일부를 잘라내는 행동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가재나 오징어도 포식자에게 다리를 붙잡히면 스스로 잘라낸다. 해삼은 게를 만나면 내장을 쏟아내고 도망간다. 곤충에서도 눈각다귀와 가까운 각다귀(crane fly)에서 같은 행동이 나타난다. 하지만 눈각다귀처럼 혹한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리를 떼내는 행동은 이번에 처음 관찰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바다에도 눈각다귀처럼 천적의 공격이 아니어도 생존을 위해 몸 일부를 희생하는 동물이 있다. 갯민숭달팽이(학명 Elysia cf. marginata)는 아예 목과 몸통을 분리한다. 일본 나라 여성병원의 요이치 유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1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갯민숭달팽이가 기생충에 감염된 몸통을 떼 내려고 스스로 목을 자른다”고 밝혔다.
더듬이가 달린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움직이고 먹이까지 먹었다. 1~3주가 지나자 심장을 포함한 몸통이 다시 자라났다. 갯민숭달팽이는 몸통을 찔러도 목을 자르지 않았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대신 연구진은 자연에서 채집한 달팽이 일부에서 몸 안에 물벼룩 같은 기생 갑각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목이 잘린 달팽이 42마리는 모두 몸에 물벼룩이 있었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가 몸 안의 기생충 때문에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bioR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5.29.541388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2023), DOI: https://doi.org/10.1073/pnas.2213512120
Current Biology(2021), DOI: https://doi.org/10.1016/j.cub.202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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